달라도 너무 다른 부부의 [튀르키예] 여행을 앞두고
(처음, 함께 가는 해외여행)
우리 부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성향을 가지고서 어찌 40년을 넘게 용케도 안 헤어지고 잘 살아왔다. 진짜로, 정말로, 참말로, 어째 이렇게도 안 맞을까? 싶은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었다. 남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가 헤어지면 아이들 때문에 절대로 안되지만(개인 생각) 주위의 눈빛을 나는 받아낼 자신이 없기도 해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둘 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어른들과 함께 살며 육아의 도움을 받았고 종손인 아들을 편애하는 시부모님들의 마음씨도 엿보았건만 나는 육아에 허덕이는 친구들을 보며 손주바라기를 하시는 시부모님의 손길에 감사해하며 온갖 종손 살림살이를 맡아서 해내며 직장 생활을 했다. 지금 되돌아보아도 후회는 없다. 딸, 아들은 별 걱정 없이 잘 커주었고 따뜻한 마음을 아낌없이 주시던 시부모님들께도 오직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렇게 어찌 인생을 살다 보니 이제 우리 부부 둘만 남았다. 되돌아보니 우리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부모님을 두고 우리끼리 갈 여건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어른들도 다 돌아가시고 자식들도 결혼을 하고 각자의 살림살이에 바쁘게 잘 살고 있는 즈음에 자식들은 휴가를 해외로 가는 것이 아닌가? 아, 그래 우리도 가자 싶었다. 그동안 큰 살림살이를 살면서 우리가 가진 재정범위안에서 다 퍼주고 안 굶고 살 형편이 되어도 그러려니 하고 감사한 마음만 가지고 살아온 우리 부부에게 이제 변화가 필요했다. 의식주를 비롯한 각종 취향과 추구하는 삶의 가치관이 너무나 다른 우리 부부다. 그러나 둘 다 묵묵히 꾹 다물고 인정할 건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다 보니 40년을 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변화를 주고자 한 것이 우리도 해외여행 좀 가자였다. 둘이 의논을 하면서 서로 안 가본 나라와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나라를 결정하다 보니 튀르키예로 결정이 난 것이다. 이유는 동서양 문화의 결합지라고 평소에 관심이 가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어쩐 일인지 둘 다 의견이 일치했다. 경비 부담은 남편이 하기로 하고 기타 계획은 내가 맡았다. 나이가 있다 보니 자유여행은 꿈도 못 꾸고 패키지로 가기로 하고 각종 여행사의 프로그램을 알아보면서 비교하여 결정을 하였다. 신청을 하고 두려움? 설렘? 기대감?으로 한 달이 지났다. 드디어 우리는 10월 17일,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야간 고속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려 인천공항 1 터미널에 도착하여 10월 18일 오전에 튀르키예로 떠났다가, 10월 26일 토요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올해 4월에 남편과 나는 아슬아슬하게 서로 양보하며 의견을 존중하면서 제주도 한달살이를 끝냈다. 그래서인지 별 탈 없이 잘 갔다 올 것 같다. 오늘도 짐을 꾸리면서 그거 왜 하는데? 뭐 그거 굳이 그럴 필요 있나? 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오다가도 뭐 그러든지, 각자 알아서 하기로 결정을 내고 각자의 캐리어를 정리하였다. 아, 아직 나의 감성은 살아있었구나 싶었다. TV에서 가고 싶은 나라를 소개하여도 나와는 상관없다 생각하고 보기만 하였었는데 일정이 정해지고 서서히 다가오는 출발일을 체크하면서 설레는 마음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나를 본 것이다. 혹시나 일행들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싶어서 준비물과 주의사항들을 보고 확인하고 또 확인을 하였다. 대학 다닐 때는 친구들과 강의까지 빼먹고 무작정 계절에 맞는 핑계를 대며 떠나곤 했었다. 여행을 갔다 오면 오감이 다 작동하여 나를 더 활기차게 해주는 것을 이미 알았건만 퇴직하고는 안 아프던 온몸도 아프고 이제 서서히 마무리인가 싶은 인생에 대한 생각을 부정적으로 하면서 네모난 아파트 안에 나를 가두고 살았나 싶다. 아자, 아자, 다시 힘내고 또 열심히 살아보자 싶다. 잘 안 맞는 우리 로또 부부의 튀르키예 여행기를 다녀와서 또 적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