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9 — 올해, 내가 가장 크게 배운 한 줄

by 멈춤의 일기장

올해를 한 줄로 정리하라면
아마 이렇게 적을 것 같다.


“나를 지키는 속도로 가야, 끝까지 갈 수 있다.”


올해 초의 나는
뭔가를 증명해야만 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조금이라도 남들 눈에 괜찮아 보이게.


그래서 해야 할 일을 적어두고,
계획표를 촘촘하게 채워 넣고,
“이번엔 진짜 달라질 거야”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획을 빽빽하게 세운 날일수록
현실의 나는 더 자주 멈춰 섰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날,
마음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날,
계획표는 나를 도와주는 도구가 아니라
“또 못 지켰지?”라고 묻는 심문지 같았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혹시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속도로
나를 밀어붙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돌아보면,
올해 내가 정말로 앞으로 나아갔던 순간들은
거창한 결심을 했을 때가 아니라,
나를 조금 더 이해해 주기로 했던 순간이었다.


오늘은 몸이 너무 피곤하니까
해야 할 일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한 날,


마음이 가라앉는 날에는
억지로 밝은 척 글을 쓰기보다
솔직한 상태 그대로를 적어보았던 날,

“왜 이것밖에 못 해?”가 아니라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거, 꽤 잘했어.”라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날.

그런 날들이 모여서
나를 조금 덜 몰아붙이는 사람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꿔 놓았다.


나는 올해에서야 깨달았다.
변화란,
한 번에 확 달라지는 장면이 아니라
“이 정도면 괜찮아, 오늘은 여기까지.”
라고 말해주며
다음 날을 이어갈 힘을 남겨두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계획을 세울 때도,
목표를 정할 때도,
이 문장을 먼저 떠올리려고 한다.


“나를 지키는 속도로 가야, 끝까지 갈 수 있다.”


그 속도가 남들보다 느려 보여도,
눈에 잘 띄지 않아도,
내가 버틸 수 있는 속도라면 괜찮다고.


올해 내가 가장 크게 배운 건,
남들이 보기에 멋진 삶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살아낼 수 있는 삶을 선택하는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