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주의보가 떴지만 하늘에는 조각구름이 떠 있었고, 날씨는 생각보다 화창했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듯 기분 좋은 출발, 차창 밖으로 스며드는 햇살은 괜찮은 여행이 될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짧은 여행은, 일 년을 버텨내기 위한 산소 같은 시간이다.
휴게소에 잠시 들렀을 때, 한파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바람을 이겨보려는 마음으로 옷깃을 움켜쥐고 달렸다.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려 옷깃을 움켜쥐고 달릴 때의 그 기분은 이상하게도 전혀 나쁘지 않았다. 바람의 냄새가 싱그럽기까지 했다. 여행 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감각이 한 가닥 한 가닥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여행은 역시 좋은 것이고, 신나는 것이다.
짧은 드라이브 끝에 숙소에 체크인했다. 영일대에 위치한 숙소였고, 제일 높은 층이었다. 커튼을 여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다 뷰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겨울인데도 날씨는 화창했고, 바다의 색은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짙고 파랬다. 너무나 아름다워 가슴속까지 시릴 지경이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광경이었고 조금이라도 빨리 모래에 발을 딛고 싶어졌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남편과 함께 바닷가 산책길에 올랐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모래사장은 눈에만 담기로 하고, 붉은 벽돌이 깔린 산책길을 택했다. 연휴라 그런지 산책길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바람이 거센데도 모래사장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우리는 걷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영일대 바다 전망대에도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고 갈매기도 바라보았다. 갈매기들은 마치 바다의 제왕인 양 날개를 활짝 펼치고 늠름하게 날아다녔다.
한참을 걷고 나니 파랗던 하늘 위로 핑크빛 저녁놀이 물결이 밀려들듯 어느새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파도의 하얀 포말도 바람에 산산이 부서지며 밀려왔다. 저녁 식사 전,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즐거운 산책이었다.
기다리던 저녁시간. 포항에 오면 우리는 주로 참치회를 먹는다. 물론 냉동 참치이지만, 누군가 말한 것처럼 ‘가성비 쩐다’ 는 표현이 딱 맞는 곳이다. 올해는 다양한 부위를 맛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주셔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내년에도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많이 추워서, 산책은 마음으로만 하기로 하고 바로 숙소로 향했다.
밤이 되자 기온은 더 내려가고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성난 파도는 하얀 거품을 연거푸 내뿜으며 무서운 굉음을 냈고, 창가에 자리한 덕분에 밤새 성난 파도 소리와 씨름해야 했다. ‘백색소음’이라는 말은 참으로 무색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바다를 향해 쏘아대는 폭죽 소리는, 이곳이 관광지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연말에 하는 여행이라 숙소에서라도 해돋이를 보고 싶었으나 아침에 잠이 들어버린 터라 남편의 휴대폰에 의지하여 해돋이를 만끽하고 아쉬운 맘을 접어야 했다.
숙소 근처에서의 아침 식사도 만족스러웠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행선지를 향해 출발했다. 도착한 곳은 호미곶. 오늘 이곳은 유난히 더 세차게 바람이 불었고, 파도는 마치 화가 난 백룡이 상대편을 향해 달려들 듯 무서운 기세로 파고를 높이며 흰 수염을 부풀리고 있었다. 모두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바람에 얼굴은 이미 얼어붙은 상태였고, 입조차 열기 힘들 만큼 공기는 차갑고 거칠었다. 그럼에도 호미곶의 상징인 ‘상생의 손’ 앞에서는 모두가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이름처럼 상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갈매기들조차 바위에 모여 앉아 바람과 파도를 피하고 있던 날이었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기온은 낮고, 바람과 파도는 무서우리만큼 공격적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사진을 찍은 뒤 호미곶 근처 바다 뷰가 좋다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따뜻한 커피를 시켜 손을 녹이며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한동안 수평선을 바라보며, 무심히 달려드는 파도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이번 포항 여행도 조용히 마음속에 남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피곤함보다 먼저 남은 것은 가족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이번 여행은 그렇게, 마음에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