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아도 쉬어도 되는 날
어젯밤도 전쟁이었다.
어김없이 시작되는 잠과의 전쟁.
하루 8시간은 자야 한다는 말이 왜 이렇게 잔인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두 시간을 자고, 세 시간을 멍하니 지새우고,
해가 뜨고서야 겨우 다시 세 시간을 붙잡는다.
태어날 때부터
“너는 잠을 자면 안 된다”는 낙인이라도 찍혀 나온 사람처럼
나는 늘 새벽과 더 친하다.
한밤중 거실에 나와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던 날들.
차라리 커피 한 잔에 새벽을 내어주고
해가 뜨면 그제야 상쾌한 아침잠으로 하루를 여는 기묘한 생활.
나의 하루는
스물네 시간이 모자란 잠과의 전쟁이다.
낮에는 졸린 눈을 부릅뜨고
집안일과 바깥일을 분주히 해내다가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온다.
어릴 적에도 그랬다고 한다.
잠을 안 자서 속을 태웠다고.
그 말을 자식 키우기 힘들다는 푸념쯤으로 들었는데
둘째를 키우면서 확실히 알았다.
아, 이건 기질이구나.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늘 지각을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5분 거리였는데
항상 5분을 늦었다.
학교 근처에 도착하면
측백나무 사이로 운동장을 들여다봤다.
텅 비어 있으면 들어가고,
선생님께 벌 받는 아이들이 보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학교에 전화해 아파서 못 간다고 전했다.
그래서 나는 개근상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다른 상은 못 받아도
개근상으로 노트 한 권은 받던 시절이었는데
그것조차 내 몫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마음의 신호를 먼저 듣고 살았던 건 아닐까.
두 아이를 키우면서
“오늘 학교 가기 싫어.”라는 말이 나오면
나는 묻지 않았다.
몸이 아픈 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무겁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다시 가자.”
너무 자주만 아니면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몸의 병은 약으로 낫지만
마음의 병은 오래 묵으면 더 깊어진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은 손을 잡고 나가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하게 했다.
그러고 나면
아이들은 다음 날
웃는 얼굴로 학교에 갔다.
지금은 둘 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그 사실이 참 감사하다.
나는 여전히 잠과 전쟁 중이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밤은
조금 더 편안했기를 바란다.
그 건강함이
오래오래 삶에 남기를 바라면서.
(학교를 폄하하거나 비난하려는 뜻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기질과, 한 부모의 선택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