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부모됨 시리즈] 책임감과 부담감.
처음엔 몰랐다.
우리 아들이 그렇게 고집쎄고 예민하고 정말 개구장이인 줄을...
순하고 순하기만 한 딸을 키우다가 먹고 자고 노는 것,
어느 하나 편하지 않은 아들을 키우려니,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다.
애들이 아기 때, 남편도 없이 친정에 얹혀 살면서 진짜 하루 하루 버티는 게 일이었다.
주말에만 볼 수 있는 남편도 토요일 밤 늦게나 잠깐이었고, 친정 부모님이 물심양면 도와주셨지만,
말도 못하는 아들과 매일 기싸움의 연속이었던 나는 매일 무릎이 훅훅 꺾여 주저 앉기 일쑤였다.
엄마로서 감당해야 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이루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 밤을 나는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아들이 돌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자라면 안 자고, 먹으라면 안 먹고, 온 집을 다 뒤지고 다니는, 나의 '통제'를 벗어난 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절대 끝나지 않는 게임이라는 것을.
이 아이와의 게임은 내가 죽어야 끝이 나는 것이라는 것을.
찰나의 그 벼락같은 깨달음에 나는 순간적으로 죽을 것 같은 공포심에 압도되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내 평생 끝나지 않을 게임이라니...
무를 수도 없고,
쟤를 어째야 하나.
나는 어째야 하나.
앞으로 나에게는 자유 따위는 없는 것인가.
뭐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것 없이,
지 맘대로만 하려고 하는 쟤 뒤만, 나는 이렇게 끝없이 쫓아다녀야 하나.
나는 이제 어쩌나.
그만 둘수도 없는 이 엄마 노릇을.. 어찌해야 하나.
등 뒤가 삐쭉 서는 그 서늘함, 죽을 것 같은 공포, 심장이 발 밑으로 툭 떨어지는 것 같았던 그 밤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마음이 든다고,
뭐, 달라지나?
내 앞에 이 아이가 있는 건 변함이 없는데. 하루하루 계속, 얘랑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그냥 살았다. 찰나의 깨달음으로 뒤통수를 한 방 후려맞고도, 그냥 살았다.
말도 못하는 아이한테 뭘 할 수도 없고, 무르고 안 볼 수도 없고.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도 안 서고,
내가 배웠던 모든 것이 다 소용이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아들과 매일이 즐거워 웃었지만, 또 매일이 힘들어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인형처럼 예쁘게, 내 말만 잘 들어주는 그런 아이를 바랬구나 싶다.
정말 운이 좋게도, 딸인 큰 애가 그런 아이였다.
모든 게 대화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뭐든 잘 먹고 잘 자는, 그런 아이였기에, 육아가 다 이렇게 쉬운 줄 알았는데,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지극히 '정상적'인 아들이, 나에게는 통제 불가한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어려운 존재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러니
나 때문에 아들이 본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닐 거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고, 품어주지 않는 엄마가 얼마나 서러웠을까.
엄마가 처음이라, 엄마도 몰랐었고, 하필이면 그런 누나까지 있었으니...
아들, 정말 미안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남편과 함께 살면서 같이 키웠으면 내 이런 마음이 좀 덜 했을거라 생각한다.
'내' 집에서 남편과 '함께' 아이를 키웠다면, 나도 좀 더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웠지 않았을까?
그러면 아들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도록 내가 좀 더 풀어놨지 않았을까?
한동안 그런 시기에 아들을 키워 아들이 편안하게 크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서 한없이 미안했던 시기가 있었다.
한참 그렇게 미안해하다가,
'이미 지나간 일, 안타깝지만,
뭐 어쩌겠나, 그런 시기에 태어난 본인의 팔자려니...'
하고 넘기고 털어버리기로 했다.
과거에 매여 미안해만 하기보다,
나도 처음이었던 엄마 노롯에 막막하고 무서운 게 당연했던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기에 당당해지기로 했다.
세상에 '완벽'은 없다.
처음 하는 부모노릇, 엄마노롯, 아빠노릇, 당연히 두려울 수 있다.
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부모로서, 얘를 대체 어떻게 키우나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것이,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러니까
그 마음은,
결국 사랑인거다.
사랑하니까 잘 키우고 싶고, 처음이니까 겁이 나는 것.
죄책감 가질 필요 없는 당연한 순리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 화이팅!!
* 본 '부모됨은 ____이다.' 시리즈는 2020년 12월 발행된 학술지 『 영아기 첫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부모됨 인식에 대한 개념도 연구_열린부모교육연구 14-4-7(심위현,주영아) 』 를 모티브로 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도출된 참여자들과의 인터뷰로 다듬어진 '부모됨에 대한 88개의 새로운 정의들(최종진술문)'을 인용해, 심리상담과 부모교육 현장에서 느낀 나의 인사이트들을 정리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