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지하철에서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갑자기 다가와서 밑도 끝도 없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친구 한 명을 지목하면서 다른 친구들은 모델 같은데 네가 왜 같이 다니냐는 둥, 여자가 얼굴에 분칠도 안 하고 다니냐는 둥, 믿을 수 없는 막말을 퍼붓는 아저씨.
대체 왜?! 어린 학생들에게 그런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둘러야 했는지, 이 맥락 없는 황당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분노와 어이없는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아이들은 알 수 없었다.
한 대 후려치고 싶을 만큼 억울하고 화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그 비정상적인 사람을 피해서 겨우 옆칸으로 이동하는 것뿐이었다.
왜 그러시냐고, 무슨 이유로 그렇게 무례하시냐고 따져 묻고,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했지만, 피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혹여 뉴스에서 들을법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사자였던 친구는 수치심과 두려움에 울먹였고, 함께 있던 친구들도 충격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해 몸이 얼어붙었다고 한다. 말문이 막힌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겠다고.
아이들이 상처받은 이유는 또 있었다.
지하철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침묵. 아니 무관심이라고 해야 할까, 방관? 방치?라고 해야 할까.
어린 학생들이 이유 없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지만 , 누구 하나 가해자를 말려주지 않았다.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지하철 안에서 아이들이 더 참담했던 이유였다.
부끄러웠다. 아무리 내 일이 아니라지만, 아이들이 당하고 있는 현장에서 어떻게 그렇게 방관할 수 있을까. 그곳을 가득 메운 사람들 중에 어른 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아이들을 지켜줄 사람 한 명 없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자신의 폭력을 아무도 저지하지 않는다는 경험치를 획득한 가해자는, 또 어딘가에서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겠지. 자신보다 강한 이에게는 꼼짝 못 하면서, 어리고 약한 아이를 비겁한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비정상적인 행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겠지. 아무도 자신의 폭력을 막지 않으니... 그렇게 괴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방관이라는 먹이를 꾸준히 먹을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