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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Oct 01. 2022

당근했을 뿐인데

마음까지 덜어낸 기분

첫 당근 거래 모피숄을 팔았다. 완전 헐값으로.

큰아이 임신했을 때 시어머니께서 사주신 숄이다. 막달이 다 되었을 때는 불어난 체중 때문에 코트를 입을 수 없었다. 입덧이 심해서 한겨울에 딸기만 먹었는데 대체 살은 어떻게 찐 건지.


난생 처음 모피라는 것을 입어봤다. 원래 브랜드, 명품, 이런 쪽으로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내키지 않았지만 사주시겠다는 호의를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선물 금액만큼 마음에 빚을 잔뜩 지고 돌아온 기분.  


그래도 당시에는 지금만큼 최악의 관계는 아니었기에 코트 대신 따뜻하게 잘 입고 다녔다. 몇 년이 지나도 새옷 같은 모피, 참 신기하면서도 싫었다. 내 마음의 부담도 새 것처럼 바래지 않고 그대로인 거 같아서.


시부모님은 젊으시고 경제력의 크기 만큼 권위적인 분들이셨다. 자식의 인생도 당신의 뜻대로 쥐락펴락하셔야 되는 분들이셨다. 부모님께 어떤 생각도 강요받은 적 없이 성장한 나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시부모님의 능력만큼 주눅들어 눈치만 보는 남편의 비위까지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의 압박 수위가 올라가고, 시부모님의 강압적인 생각과 태도들이 누적이 되면서 나는 한계를 느꼈다. 시부모님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의 인생 하나 리셋시키지 못하는 남편과의 마침표가 절실했다. 그마저도 할 수 없는, 한 때나마 연민으로 남겨둔 덜 묶은 매듭같은 관계.


상대의 마음을 모두 공감하며 살 수 없음을 안다. 내가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알 수 없으니, 내가 얼마나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고통이라는 사람에게 , 적어도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는 이기심 정도는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닌가...이것도 내 이기심인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데워준 모피숄에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담기면서 어떻게든 떠나보내고 싶었다. 모피가 무슨 죄라고. 


사이즈가 맞지 않을까 걱정하던 내 첫 구매자님은 생각보다 너무 예쁘게 잘 어울렸다. 내가 입었을 땐 불편한 감정이 오버랩되면서 내 얼굴까지 모피색처럼 어두워 보이더니, 그 분이 입으시니 본인 옷처럼 너무 고급스럽게 잘 어울려서 헐값에 판매한다는 생각보다는 좋은 주인 찾아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치...옷은 죄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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