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
아직 내 무의식은 대학이라는 무겁고 불필요한 가치를 완전히 부인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학을 '가지 않아야 하는'이 아니라 '그래도 가는' 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니.
큰 아이의 대학 진학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림' 하나만 보는 아이였기 때문에 당연하게 디자인 전공을 선택했다. 디자인의 분야는 다양했다. 시각 , 제품 , 무대, 공간, 플랫폼 등등 모든 곳에 디자인이 함께 할 만큼 콘텐츠가 많았다.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열의에 넘치는 교수님들의 수업과 과제 덕분에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이 힘들지만 재밌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는 휴학과 자퇴를 계속 고민한다. 한 학기에 400만 원 가까이 되는 학비를 낼 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인가 하는 것이 이유이다.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교양을 이수해야 하고, 왜 배워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 전공을 들을 때면 돈과 시간을 함께 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선택 과목들의 선정은 어떤 기준으로 된 것일까? 들어두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는 납득 안 되는 이유 말고,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그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지는 설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4년 등록금이면 다른 전문적인 기관에서 훨씬 도움이 되는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아이의 말에 사실 할 말이 없었다. 나 역시도 대학에서 대안도 희망도 얻지 못한 채 그저 4년이란 시간과 돈만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대안은 학원에 수업료를 내면서 찾아야 한다. 그럴 거면 대학은 왜 간 걸까.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하니까? 그러니까 , 그래도 왜...
작은 아이가 수능을 앞두고 있으니 더 모르겠다. 하고 싶은 공부를 대학에서 할 수 없다는 아이에게 가지 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그럼에도 가야 한다고 설득할 수도 없다.
대학은 꼭 장기할부로 결재한 명품백 같다. 할부금이 아까워 가끔 들지만 장지갑 수납 하나 제대로 못해 불편하다. 아무 옷에나 어울리지도 않아 장롱 속에 더 많이 모셔 둔다.
이럴 거면 왜 샀을까 팔아 버리려니 중고가는 그냥 헐값이다.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후회해 본들 소용이 없다. 결국 편하고 가벼운 가방을 새로 산다. 명품백은 장롱 속에 모셔 두고 할부금만 꼬박꼬박 갚으면서.
4년 등록금과 금 같은 시간들을 대학에 쏟아부은 대가로 졸업증명서 한 장을 받았다. 생각보다 그 종이는 쓸모가 없었다. 헐값이라도 현금을 받을 수 있는 명품백이 그나마 좀 나을지도.
휴학이든 자퇴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다. 대안이 될 수 없는 대학이라면 굳이 갈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불안한 내 마음을 설득시킬 명분을 찾을 수가 없다. 어느 쪽으로 선택하더라도 나를 설득시키고 아이를 믿어 주려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선택할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