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너머의 시선]: 한국 부동산은 왜 ?

: 한국 부동산은 왜 중남미의 담장을 닮아가는가 ?

by SOLUNA

안녕하세요. 태평양 너머의 시선, Soluna입니다.


지난 27년간 글로벌 공급망(SCM)의 최전선에서 전 세계를 누비며 자본과 물류의 흐름을 지켜봐 왔습니다. 현재는 중남미의 낯선 땅에서 매일 아침 안개 너머의 세상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 중남미에서 목격하는 날 것의 풍경들과 그 너머의 통찰이, 고국의 젊은 층과 중년층이 복잡한 정치적 선동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현상을 꿰뚫는 힘을 기르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은 제가 매일 아침 마주하는 중남미의 짙은 안개 속에서 발견한, 우리 부동산 시장의 불길한 기시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안개 너머의 기시감: 극단적 양극화의 풍경


중미의 아침은 늘 짙은 안개와 함께 시작된다. 이곳은 대조와 모순의 땅이다. 높게 솟은 전기 철조망과 무장 경비원이 지키는 화려한 '콘도미니오(Condominio)'의 담장 바로 너머에는, 하루치의 고된 노동으로 간신히 월세를 감당하는 이들의 고단한 삶이 그림자처럼 펼쳐진다.

중남미에서 부동산은 더 이상 정책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고착화된 '운명'이다. 자본을 가진 극소수만이 지대(Rent)를 향유하고, 대다수 서민은 평생을 벌어 집주인의 자산을 불려주는 임대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곳에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없다.

그런데 최근 고국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와 옥죄어오는 규제들. 선한 의도로 포장된 이 정책들이 역설적으로 한국의 주거 환경을 내가 매일 목격하는 '중남미형 초양극화'의 입구로 몰아넣고 있다는 불길한 기시감 때문이다.


2. '전세'라는 한국형 사다리의 해체


한국 부동산 시장을 지탱해온 가장 독특하고도 강력한 에너지는 '전세'였다. 전세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만의 독창적인 주거 완충지대였다. 서민들은 전세를 통해 주거 비용으로 증발할 소득을 보존했고, 이를 종잣돈 삼아 내 집 마련이라는 사다리를 올랐다.

하지만 현재의 징벌적 세제는 이 사다리의 발판을 하나씩 부수고 있다. 다주택자가 양도차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순간, 그들은 자선 사업가가 아닌 이상 '비용의 전가'를 선택한다. 보유세 부담과 규제 압박은 전세를 월세로 강제 전환시킨다.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 고지서는 서민들의 가처분 소득을 잠식하고, 이는 결국 자산 축적의 기회를 원천 봉쇄한다. 전세가 사라진 자리에는 중남미식 '렌트 경제(Rent Economy)'가 들어선다. 우리가 누려온 '사다리의 축복'이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3. 자본의 역습: 공간의 분권화와 자산의 공동화(Hollowing out)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단순히 집값을 잡는 것을 넘어,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거대한 국가 설계도와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그들이 그리는 인과관계의 지도는 명확하다.

정책적 인과관계의 설계: 수도권 다주택자에게 징벌적 과세와 대출 규제를 가하면, 수도권 부동산의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 갈 곳 잃은 막대한 민간 자본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하고 저평가된 지방 부동산이나 기업 투자로 흘러갈 것이며, 자연스럽게 인구와 자산의 흐름이 분산되어 지방 분권이 완성된다는 논리다. 즉, 수도권이라는 '항아리'에 구멍을 내서 그 안의 자본이 지방이라는 '마른 논'으로 흘러가게 만들겠다는 일종의 압박식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27년간 글로벌 공급망(SCM)의 최전선에서 자본의 생리를 지켜본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자본은 결코 '의무감'이나 '압박'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자본은 오직 '효율'과 '안정성'이라는 두 축을 따라 흐른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도권의 매력도를 낮춘다고 해서 그 자본이 고스란히 지방으로 내려가 뿌리내리지 않는다. 생산 효율성이 떨어지는 곳에 공장을 지으라고 강요하면 자본은 국내 지방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더 높은 효율을 보장하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로 탈출(Capital Flight)해버린다.


부동산 자본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부동산을 징벌하면 자본은 지방으로 가는 대신, 규제가 없고 수익성이 검증된 글로벌 자산 시장으로 증발해버린다. 미국 나스닥의 우량주나 배당 성장이 확실한 ETF로 옮겨가는 것이다. 결국 정책이 의도한 '공간의 분권화'는 실현되지 못한 채, 국가 전체의 자산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산의 공동화(Hollowing out)'라는 부작용만 낳을 위험이 크다.


4. 제언: 징벌을 넘어 상생의 생태계로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다주택자를 벌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민간 자본을 임대 시장의 안정적 공급원이자 국토 균형 발전의 파트너로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책이 성공하려면 기업가와 자본가들이 강요에 의한 희생이 아니라, 국토의 균형 발전이 자신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확신과 공감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 구체적인 제언을 던진다.

첫째, 민간 임대 사업자에 대한 '포용적 인센티브' 도입: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낙인찍는 정치를 멈추고, 그들을 '민간 임대 주택 공급자'라는 공적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장기 전세를 제공하는 이들에게 확실한 세제 혜택을 주어, 민간 자본이 스스로 임대 시장 안정에 기여하게 만드는 유인책이 필요하다.

둘째, 리츠(REITs)를 통한 부동산 자본의 민주화: 개인이 직접 집을 여러 채 소유하지 않아도 부동산 성장의 과실을 나눌 수 있는 통로를 넓혀야 한다. 소액 투자자들이 대형 임대 단지의 수익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활성화해 직접 소유의 욕구는 분산시키되, 시장의 임대 공급은 안정화해야 한다.

셋째, 공공 임대의 질적 혁신과 거점 도시 인프라 투자: 전세의 실종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공급하는 공공 임대는 '품격의 혁신'을 이뤄야 한다. 동시에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들에게는 파격적인 규제 완화와 인프라 지원을 제공하여, 자본가들이 스스로 지방 투자를 '합리적인 비즈니스 결정'으로 받아들이게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결론: 주거의 자유를 위한 간절한 신호


내가 살고 있는 중남미는 한때 풍요로운 자원을 바탕으로 번영을 꿈꿨으나, 잘못된 자산 정책과 양극화의 고착으로 인해 사회적 활력을 잃었다. 한국은 아직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다. 하지만 '다주택자 징벌'이라는 단기적인 정치적 승리에 취해 전세라는 독특한 주거 복지 시스템을 파괴하고 자본의 자발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중남미 도시들에 존재하는 높은 담장을 닮아가게 될 것이다.


정책의 목적은 공평한 가난이 아니라, 모두가 꿈꿀 수 있는 주거의 자유여야 한다. 사다리를 끊어내는 칼날을 거두고, 누구나 딛고 올라갈 수 있는 더 견고한 사다리를 놓는 정치를 기대한다. 그것이 태평양 너머에서 내가 고국에 보내는 간절한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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