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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두 Apr 29. 2023

08. 가족이 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한가요?

[변신]

 1) '무능한' 사람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을 수 없나요?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흉측한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했고, 방에 가둬놓고 음식을 넣어주며 돌봐준다. 가족들은 무능해진 그레고르를 점점 진짜 벌레로 취급했고,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힌 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기 전 집안의 기둥이었다.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다주고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흉측한 벌레가 되자 가족 취급조차 해주지 않는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조건 없이 사랑을 주는 관계?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도 서로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경제적인 도움이든, 정신적인 도움이든. 너무 계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각자의 역할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고 그걸 바르게 수행할 때 비로소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은 거다.      


   얼마 전에, 백수였던 가족이 자살했는데 오히려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돈을 벌지 못하면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것일까? [변신]에서 그레고르가 무능한 벌레가 된 것처럼, 가족을 벌레라고 느낄까? 가족이 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한 걸까?     



2) 나는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존재일까?


   사실은, 나도 가끔 스스로가 가족의 짐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까지 뭐 하나 해낸 게 없다. 공부도 못했고, 그림에도 재능은 없었다.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많이 불안하다. 나는 이렇게 무능한 사람인데 가족들에게 폐만 끼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고민이 많았다. 차라리 내가 없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기적인 생각이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가족들은 슬퍼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갈등을 겪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렇더라도 쉽게 미워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가족을 좋아한다. ‘가족’이라는 사실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부족하더라도 이해해 주고 서로가 잘 될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족이다. 그러니 내가 사라져도 가족들은 절대 후련해하지 않을 것이다.

  


3) 가족을 연결해 주는 '대화'

   

   가족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대화의 결핍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리적으로 가까이에 있어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자주 대화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와 심리적인 거리가 항상 일치한 것은 아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이 워낙 바쁘고 힘들기 때문에, 귀가 후에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에서 개인 시간을 보내는 일이 더 많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친구보다도 더 어색한 사이가 되어서, 마주쳐도 휙 지나가버린다.


   우리 가족도 서로 성격이 잘 맞지는 않아서, 만나기만 하면 다투곤 한다. 늘 싸우면서도 대화를 자주 나눈다. 자기 전에 안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일상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가끔 시간을 내서 놀러 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결국은 싸우고 돌아오지만, 항상 재미있었던 기억만 남는다. 그리고 자주 싸우면서도 나름의 합의점을 찾고 같이 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자주 대화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처음에는, 대화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서 마주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억지로라도 마주치며 이야기하다 보니,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도 단둘이 있으면 어색하지만, 이제는 같이 있어도 껄끄럽지는 않다. 가족들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시간을 내서 대화를 해보자. 가벼운 일상 얘기도 좋고, 말이 잘 나오지 않으면 안마를 해주면서 시작해도 좋다.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사이가 틀어지더라도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은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어야만 가족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시기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가족이라면, 힘든 순간에 정신적으로 구원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가족에 조건이 있다면, 함께 있는 것 만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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