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따뜻하게 감동을 주는 선물이 있다.
아들이 군대에서 보낸 손편지, 딸이 유치원 다닐 때 어버이날에 건네준 감사 편지, 남편이 필리핀에서 근무할 때 보내온 편지는 언제 다시 읽어도 다정하다. 가장 최근 선물은 며느리에게서 받은 빨간 줄이 선명한 임신 테스트기였다. 속으로는 오래 기다렸지만, 아이들 마음이 더 무거울까 싶어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혼자 마음을 졸였다. 그렇게 기다리다 받은 그 선물에 우리 가족 모두가 감동했다. 그 아기는 이제 다섯 살이 되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선물이 있다.
2000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IMF를 막 지나온 시기였고, 이리저리 바쁘게 살아가던 때였다. 나는 한 재단의 후원을 받아 지리산에 있는 작은 공부방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을 활용한 읽기와 쓰기’ 수업을 하러 갔다. 두 번의 사계절을 보내며, 소풍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그 길을 오갔다.
공부방은 신심이 깊은 목사님 내외가 운영하고 있었고, 지리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이들은 공부방 위쪽 마당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를 기다렸다. 차가 도착하면 우르르 달려 내려와 서로 내 가방을 들겠다고 나섰다. 책이 들어 있어 제법 무거웠지만, 아이들은 마치 선물이라도 받은 듯 깔깔거리며 가방을 들고 공부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모인 아이들은 대부분 아픔을 안고 있었다. 외환 위기로 직장을 잃고 아내마저 떠난 젊은 아빠, 혹은 혼자가 된 젊은 엄마들, 도시에서 버티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가족들. 모두 가슴 한편에 슬픔을 묻고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매일 술에 취해 있는 아빠에게 화가 나 있었고, 하루아침에 친구와 헤어진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해 늘 불만이 가득했다. 그 분노는 아이들끼리 부딪히는 방식으로 자주 터져 나왔다.
수업 도중 싸움이 나서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만둘까 싶다가도, 이상하게 아이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 인내심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해졌을까.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수업 중 화가 나 밖으로 뛰쳐나갔던 아이도, 내가 떠날 시간이 되면 차 창문 틈으로 사과 편지를 던져 넣고 달아나곤 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오래도록 가슴이 아렸다.
그렇게 2년이 흘러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아이들과 목사님은 교회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공연에 나를 정중히 초대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가야 했지만, 그날은 뜻하지 않은 일로 공연 시작 시간이 지난 뒤에야 도착했다. 미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때까지도 공연은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대 위에 그대로 서 있었고, 객석은 조용했다. 맨 앞 가운데 자리가 비워진 채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자 목사님이 그 자리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 공연은 곧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준비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눈물이 흘렀다. 나를 본 아이들의 춤과 노래도 흔들렸다.
오래도록 그날의 장면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날 아이들이 내게 건네려 했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기다림이었을까, 아니면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였을까. 지금도 가끔 그 빈 자리를 떠올린다. 누군가를 위해 남겨 두었던 자리, 그리고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