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by 벼리


공부를 하며 만난 그녀는 고전적인 미인이었다. 키가 크고 긴 생머리를 찰랑이며 말수가 적은 그녀는, 늘 수줍어했다. 나와는 띠동갑이었지만 나이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그녀에게서 어른다운 태도를 보았다.


그녀는 딸만 둘인 집 둘째였으나, 장녀처럼 살았다. 농사를 짓고 돼지를 키웠으며, 저녁이면 트럭을 몰아 학교 급식소에 가 잔반을 실어 왔다. 결혼도 하지 않은 아가씨가 그 일을 거침없이 해내는 모습에 나는 감탄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숨기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받아들이고 살아갈 뿐이었다.


그녀는 연극과 글쓰기를 좋아했고, 사람들의 생일을 기억해 꽃을 들고 찾아왔다. 우리는 책을 읽고 글을 나누었으며, 그녀의 트럭을 타고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말이 없어도 침묵이 편안했고, 삶을 대하는 방향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녀는 나를 피했다. 몇 번이고 다가갔으나 그녀가 나를 피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유를 듣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스무 해가 지났고, 십여 년 전 보낸 문자에는 답이 없었다. 전화번호는 그대로였지만, 나라는 것을 알자 침묵했다.


왜였을까. 우리의 관계가 한 마디 설명도 없이 끝날 수 있는 사이였을까. 그녀가 말하지 못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을 나는 아직도 하고 있다. 사람은 떠났지만 기억은 떠나지 않는다. 지금은 같은 방향으로 걷던 그녀를 나 혼자 떠올리고 있다. 아직도 그녀만한 단짝은 없다. 단짝이란 둘 사이의 교감이 있을 때만 가능한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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