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말 한마디

by 새벽

그러던 어느 오후, 비가 조용히 내리던 날이었다. 윤주는 서점 안을 정리하다가 문득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고, 우산을 접은 한 여학생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젖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용히 에세이 코너 앞에 멈춰 섰다. 윤주는 잠시 그녀의 눈빛을 살폈다. 조금은 지쳐 보였고, 어딘가를 향해 간절히 손을 뻗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윤주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혹시, 마음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여학생은 잠시 놀란 듯 윤주를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눈동자는 여전히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다.

"요즘 좀… 지치기도 하고, 혼란스러워서요.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서 들어왔어요."


윤주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살짝 웃으며 말했다.

“매일이 즐거우면 좋겠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죠. 그래도 그런 날이 있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요.”


윤주의 말 이후 두 사람의 사이에 적막이 돌다가, 윤주가 짤막하게 말했다.


"제가 예전에 정말 힘들었던 시절에 한 권의 책이 큰 위로가 되어줬어요. 누군가 그 책을 내게 건네줬을 때, 처음엔 그저 종이 묶음일 뿐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안에 있던 문장들이 제 마음을 다독여줬어요. 그래서, 만약 괜찮다면… 그런 책을 하나 추천해 드려도 될까요?"


여학생은 말없이 윤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마치 ‘그럴지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윤주는 작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에세이 코너 옆 선반으로 향했다. 몇 권의 책을 천천히 쓰다듬듯 넘기다가, 한 권의 책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책의 표지는 오래된 듯 약간 닳아 있었고, 그 안에는 누군가가 접어둔 페이지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이 책이에요.”

윤주는 책을 여학생에게 건넸다.

“읽다 보면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이 하나쯤 생길 거예요. 그 문장이 오늘을 조금 견디게 해 줄지도 몰라요.”

여학생은 책을 받아 들고 잠시 표지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작게, 정말 작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저도… 그런 문장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비는 여전히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서점 안의 공기는 한결 따뜻해진 듯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이제 어색함보다 묵직한 온기가 감돌았다.

윤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정리를 시작했다.


여학생은 추천받은 책을 들고 에세이 코너 옆의 작은 의자에 앉았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빗소리와 섞여 서점 안에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