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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시간을 가져갔을까?

by 새라

나이의 숫자가 하나씩 올라갈수록 시간이 빠르게 훅 지나가는 것 같다. 분명히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일 년인데 나의 일 년은 30% 에누리된 듯하다. 누가 내 시간을 가져갔을까? 시간 도둑을 잡기 위해, 온전한 나의 한해를 위해 기록이 필요했다. 작년 12월, 2025년 새해 연간 계획을 세웠다. 목표는 딱 4가지.


첫 번째, 매일의 감사를 기록했는가?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이어령 선생의 이 말을 참 좋아한다. 매일의 감사를 적었다. 물론 비어있는 날도 며칠은 있다. 건강하게 학교에 잘 다녀주는 아이들에게 감사, 불혹을 넘긴 딸을 아직도 걱정하는 부모님이 계신 것에 감사, 성격은 서로 전혀 다르지만 늘 나를 지지해 주는 남편에 감사, 기쁜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는 직장에 감사, 언제든 만나자고 연락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에 감사. 나만큼이나 나의 탁구승급을 바라는 탁구장 회원들에 감사. 내 생각나서 샀다며 드립백을 건네는 동료에 감사. 폭설이 내린 날에도 무사히 출근할 수 있어서 감사. 마땅한 반찬이 없었는데 밖에서 친구랑 밥 먹고 왔다고 아이가 말해서 감사. 사소한 감사들이 다이어리 곳곳을 채웠다.


두 번째,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는 잘 되고 있는가? 힘들다. 아침 일어나기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퇴근해서는 서둘러 집안일을 하고 탁구장으로 가고, 어떤 날은 모임이 있고. 밤이 되면 에너지가 바닥나서 침대에 쓰러지기 일쑤다. 책을 들고 침대에 등을 기대 살포시 앉아보지만, 스르르 자세는 흐트러지며 어느새 잠이 든다. 책은 이불과 함께 침대 위에서 밤새워 놀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주말에 몰아서 예전에 쓱 훑고 갔던 책들을 재독 했다. 다시 읽어볼 생각으로 지나쳤던 책들이기도 하고 재독을 하면 더 빨리 읽어져서 주 1회 독서가 가능하니 꽤 괜찮은 방법이다!


세 번째는 가정 돌보기다. 부모님, 아이들, 집안 정리 3가지가 있다. 부모님께 주 1회 전화하거나 방문하기,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맛난 음식을 만들어 주기, 매월 마지막 한 주는 집안 한 구역 정리하기를 계획했다. 아이들에게 해준 거라곤 김치볶음밥과 소고기 된장찌개, LA 갈비구이, 떡볶이가 있다. 이 정도면 괜찮다. 이번 달은 설 명절도 있어서 부모님을 직접 찾아뵙기도 했으니 잘한 거로 치자. 마지막 한 주는 집안 한구석 정리하기인데 아직 그 부분이 남았다. 오늘은 그걸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슬기로운 탁구 생활은 어떻게 지속하는가? 막연히 그냥 했던 동작들에서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아~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왼발에 반동을 주면 자세가 더 낮아지고 오른 다리에 무게중심이 더 실리는구나. 오른쪽으로 공이 올 때 오른 다리에 힘주며 자세를 낮춰야 박자와 높이가 맞는구나. 팔을 최대한 몸에 가까이 붙였다가 나가야 힘도 잘 받는구나. 사소한 알아차림에 고개 끄덕이고, 동작을 제대로 해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음을 알아간다. 그 많은 운동 중에 알다가도 모를 운명 속에 내가 어쩌다 탁구를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탁구에 빠져 울다가 웃다가, 애써 버티면서도 알 수 없는 끌림 속에 오늘도 탁구를 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운동을 좋아했었는지, 언제부터 흐르는 땀을 개운하다 느꼈는지 나의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해 간다. 탁구로 맺어진 얇은 인연 역시 내 삶에 신선함을 더한다. 어른이 돼서 만나 뛰면서 함께 노는 사람들. 학창 시절 청군 백군 운동회가 있었다면, 지금은 여러 동호회가 함께하는 탁구대회에서 자신의 동호회를 한마음으로 응원한다. 달라진 건 나이일 뿐 마음은 초등학교 운동장 그대로다.


이렇게 적다 보니 2025년 첫 한 달이 훅 지나간 것 같았지만 꽉 차게 보낸 한 달 같다. 다이어리를 가득 채운 기록의 힘일까? 아니면 새해 첫 달이 주는 강력한 시작의 힘일까? 누군가 800㎞가 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해 이야기한 적 있다. 완주를 하려면 30일에서 35일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걷다가 지쳐 멈추면 산길에서 밤을 보내야 하기에 무조건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고. 그래서 시작 첫날부터 후회가 밀려온다고 한다. 왜 이 힘든 길을 자청해서 걸을까 하면서. 하지만 800킬로의 길을 30일이 아니라 딱 하루 걷는다 생각하고 하루를 목표로 걷다 보니 기적처럼 완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의 하루, 한주, 한 달,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 역시 내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일지 모른다.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기대하는 지금의 시간에 감사한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날 같았지만, 나의 기록은 똑같지 않았다. 시간 도둑은 감사한 일상을 잊은 나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2025년, 매일의 기록 속에서 의미와 즐거움 모두를 찾아보리라. 아마도 12월의 나는 1월 지금의 나보다 더 감사하고, 더 행복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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