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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유 JOYU Dec 14. 2022

무뚝뚝한 아빠의 여섯 시 알람.

- 아빠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지 않았을까.


우리 아버지는 실로 엄청난 능력이 있는데, 바로 모든 사람을 자신을 어려워하게 하는 능력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극강의 낯가림을 가진 자 즉 mbti로 따지면 i중의 i로 심한 낯가림으로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시겠다.


얼마나 심각하냐면 본인의 딸이자 이십 년도 함께 동고동락한 나한테도 낯을 가린다. 지금도 내 눈을 보고 대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본인이 꼭 해야 할 말이 있을 때만 전화를 하기 때문에 아빠한테 전화가 오면 깜짝 놀라서 받는 정도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웃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고 그 흔한 어린이날 선물 한 번 사 들고 오는 법이 없었다.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회사 회식을 일식집에서 하면 초밥을 좋아하는 딸을 준다고 포장해 온 초밥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가시는 것 그 정도뿐이었다. 취직해서 선물을 해 드려도 "허허" 멋쩍게 웃는 게 최고의 찬사였던 것으로 간주했으니 뭐 고맙다는 말은 태어나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도 아빠랑 전화하면 아빠는 오로지 "어" 밖에 안 하시는데, 


"아빠 오고 계세요?"


"어~"


"식사하셨어요"


"어-어~ "


"엄마가 아빠 안 드셨다고 하면 준비하신다던데."


"어-"


이런 식의 눈치껏 알아듣는 일명 '어'토크만 하시는 분이 되시겠다. 




이런 아버지도 세상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할머니다. 어릴 때부터 이십 년간 쭉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에서 자랐는데, 쭉 지켜본 결과 아빠는 할머니한테도 낯을 가리는 아주 일관된 사람이었다.


아버지도 나름의 아들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퇴근해서는 꼭 할머니 방문 앞에 섰다. 똑똑똑 두드리고는 "어머니 저 왔어요." 하고 할머니가 "아들 왔냐"하고 문을 열면, 인사만 삐죽하고는 밥 먹으러 내빼버리는 숫기 없는 아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엄마는 도대체 아빠의 어떤 모습을 보고 결혼했나 의문을 품으며 둘의 결혼 앨범을 펼쳐보고는 했다. (앨범 속에서는 웃고 있었던 것을 봐, 행복하긴 했나 보다)



남이 보기엔 저게 뭐냐 싶겠지만 아들의 성정을 쭉 지켜본 손녀로서 분석해본 결과 어린 마음에도 아빠는 할머니한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서울로 이사를 오고, 할머니는 말년을 딸들 곁에서 보내고 싶다며 지방에 남게 되셨다. 서울에서 바쁜 삶은 계속되었고, 전만큼은 자주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명절만큼은 할머니를 모시고 며칠밤씩 곁에 모여 도란도란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한테 그렇게 치매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한번 찾아온 치매는 막을 수 없었고 초등학교 내내 반장을 도맡아 했을 정도로 총명했던 나의 사랑은 가장 최근 기억부터 서서히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산책을 나왔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집 열쇠를 못 찾기도 하고 모든 것은 그렇게 하나둘씩.


어느 날 할머니가 나보고 "네가 누구더라?"하고 물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결국 밤에 한강을 따라 걸으며 눈물을 쏟아낼 때,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결국 아빠였다.


평소에 살갑게 자주 표현이나 했으면 아쉬움이라도 안 남았을 것을, 매번 문 앞에서 맴돌기밖에 못하는 저 아들은 나중에 밀려올 아쉬움을 어떻게 다 감당할까 내가 다 애가 탔다. 




우리의 노력과, 병원의 치료, 마음을 다한 기도를 열심히 끌어모아도 콩쥐의 밑 빠진 독 마냥 성큼성큼 할머니의 기억은 베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천 비행 때 아빠랑 이야기를 하는데 느닷없이 아빠의 알람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오후 여섯 시길래 잘 못 맞춘 알람인지 알았는데, 아빠가 벌떡 일어나 베란다로 향했다. 딛히는 유리문 사이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저예요. 식사는..."


엄마한테 들어보니, 아빠는 어느 날부터 매일 여섯 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할머니한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효도는 셀프라며 어머니 돌아가시고 묘 앞에서 우는 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더니 그렇게 매일 같이 그 숫기 없는 아들은 전화를 꺼내 들었다.


일 년이 넘도록 무슨 일이 있어도 여섯 시가 되면 "어머니" 하고 전화를 들었는데, 엄마가 언젠가 말하길 할머니 목소리에 힘이 있고 없고에 따라 너네 아빠 기분도 달라진다고 하셨다. 발을 동동 구르고 "어머니 어머니"하고 불러봐도, 늦은 밤 "집에 물이 들어온다. 파도가 넘어와"라며 초조해하는 할머니의 수많은 밤을 다 어찌하지 못했으니까.



어느 날 아빠랑 어색함을 달래며 같이 바둑을 보는데 아빠가 한숨을 푹 내 쉬더며 꿀이라도 바른 듯 닫혀있던 입을 뗐다.


"내가 오늘 슬픈 이야기 좀 하나 해야겠다"라고 하시길래 놀랜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괜히 머쓱한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무슨 일인데 하고 묻는 나의 말에 아빠는 씁쓸히 고개를 저으며 애꿎은 입술만 꾹 깨물며 말했다.


"힘든 거는 혼자 견뎌야지. 괜히 말해서 뭐하겠어....." 


방을 나서는 아빠를 보며 기어이 또 혼자 삭혀내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미련한 모습에 목 끝이 쓰렸다. 


말을 못 하는 아빠를 이해하면서도 이러한 상황에도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 앓는 할머니의 아들을 보면서 어떠한 위로의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저 바둑을 보는 아버지 곁에 조용히 머물렀다.



치매마저 곱게 다녀간 우리 할머니는, 가시는 날조차 하염없이 맑은 날을 고르셨다.


내가 인천 비행으로 한국에 도착한 날, 할머니는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할머니는 이 못난 손녀를 품어주기로 했나 보다. 



"할머니가 나 올 때까지 기다려줬나 봐"



비행을 못 가게 되었다며 친구에게 연락하는데 자꾸만 눈앞이 뿌예졌다. 쏟아지는 눈물을 애써 닦으며 옷장에 있는 검정 옷을 찾아 헤맸다. 애써 세수를 하며 빨개진 눈가를 감추며 웃어 보였다. 어린 동생들이 있고, 나보다 힘들 아빠 앞에서 첫째는 씩씩해야니까. 


회사에 급하게 메일을 쓰고 기차를 타고 내려갔더니, 먼저 내려간 아빠가 미리 마중 나와있었다. 어떠한 얼굴로 아빠를 마주해야 해야 할까 싶었는데, 아빠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차분한 모습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할머니가 어떻게 가셨는지 덤덤하게 우리에게 설명해줬다.


"마지막에 웃으면서 편안하게 호흡하시면서 가셨어. 얼굴이 환하게 빛났어."




발인하기 전날, 새벽을 향하는 시곗바늘에 잠자리에 들려고 준비를 마쳤다. 비행 때부터 며칠밤을 새고 있던 터라 쪽잠이라고 자려고 방에 들어서는데 손님들 자리에 홀로 계시는 아빠가 눈에 들어왔다.


급하게 부고 연락을 받고 친한 형님이 서울에서 지금 내려오신다고, 아마 새벽 세시는 넘겨야 될 것 같다며 혼자 기다리겠다며 아빠는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차마 아빠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노랑 커피 믹스 두봉을 타 아빠 앞에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두어 시간 지났을까, 멀리서 허겁지겁 아저씨가 들어왔다. 술자리에서 서둘러 오시는 길이라 대리를 불러서 오신다고 하더니 진짜 얼굴이 벌건 아저씨가 옷매무새를 다 잡으며 들어오셨다.


"내가 너무 늦었지"


"아닙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라고 말하는 아버지를 보더니, 그 형님은 와락 동생을 껴안으며 다 안다는 듯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자네가 매일 알람을 맞추고 어머니한테 전화하는 거를 아는데. 


자네가 그렇게 마음을 쓰는 거를 내가 다 봤는데.


내가 어떻게 안 와. 내가 어떻게..."


떨려오는 목소리 끝에 두 어른의 눈이 빨개진 것을 보고 애써 뜨거운 코끝을 닦으며 상을 차렸다. 절을 하시고 자리에 앉은 아저씨들 테이블에 초로병과 미리 사둔 숙취해소제를 다져다 놨다. 아빠가 잔을 채우며 말했다.


"형님, 우리 첫째여."


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두 분을 두고 조용히 자리를 비켜드렸다.





장례식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와 아버지가 쓰러지듯 잠에 빠져 들자 가만히 동생을 불렀다. 



"가서 아빠 여섯 시 알람 좀 꺼줘."




동생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안방으로 향했다. 며칠 째 못잔 아들이 오늘은 푹 잠들길 딸은 바래본다.





-


그간 여러 번 브런치를 켰지만 글이 써지지 않았어요. 키보드 앞에 놓인 손가락이 턱 하니 막히는 게, 아무래도 아직 쓸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마음이 조금 힘들었나 봐요. 


실은 조금 재미가 없었어요, 모든 게.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뭔가 후련한 것 같았는데,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글을 기다려주신 분이 있다면 사무치게 감사하고, 아무것도 올리지도 않는데 구독 취소도 안 해주신 분들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에는 다시 재밌고 유쾌한 승무원 일상으로 글을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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