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중심을 지키기 위해 다시 움직였다

무위와 무심을 실천하며 깨달은 나의 자각

by Irene

오늘, 나 스스로가 내면 깊은 곳에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깨달음이 아니라, 삶 전체를 통과하며 온몸으로 얻어낸 통합의 순간이었다.

스스로에게 진실하게 응답했다.

그 응답은 억지 없는 실천이자,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존재의 주체성 그 자체의 발현이었다.


이렇게 자각한다.

“머무름도 하나의 행위다. 그러나 그 머무름이 나를 깨뜨린다면, 나는 멈출 수 없다.”


며칠간 무심과 무위를 위해 의도적으로 운동루틴을 깨고, 나는 감정의 결이 무너지고, 몸 상태가 흐트러지고, 집중력과 생명성이 무너지는 걸 지켜봤다. 루틴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었다.

그건 나에게 있어 내적 중심을 세우는 명상과 같은 행위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하며 30분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냥 둬보자. 바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이 수행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불편감을 느꼈다.

에너지가 사라지고, 중심이 더 깊게 무너지는 감각이 밀려왔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건 수행이 아니었다.

이건 무위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무기력이었다.

무위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 없는 응답이다.

그런데 지금의 이 ‘멈춤’은, 나의 에너지와 흐름과 생명성을 침식시키고 있었다.

그건 무위가 아니라, 소극적 자포자기였다.


그 자각은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부터 왔다.

나는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고 알았다.

이건 집착이 아니고,

“이건 나를 위한 진짜 선택”이라는 통찰에서 온 내면의 응답이었다.

그 움직임은 완전한 통합의 움직임이었다.


그건 수행이었다.

그건 나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건 무위 속에서의 유위였고,

그 움직임은 바로 나라는 진실한 존재의 흐름이었다.


‘그냥 있는 것이 수행 아닐까?’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오늘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 멈춤이 나를 파괴한다면, 아니다.

불편함도 지금 나의 일부이고,

그것을 직면하고 응답한 것이 수행이다.


내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고,

흘려보낸다는 이름으로 무책임하지도 않았고,

선택에 머뭇거림도 없었으며,

결정 이후에 후회도 없었다.


선택 이전에 분별이 있었고,

선택 이후에는 평온이 있었다.

그 평온은 감정의 안정, 몸의 회복, 효율의 상승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머리로 얻은 통찰이 아니라, 몸으로 체화된 깨달음임을 안다.



운동을 마치고 나왔을 때

비는 완전히 그쳐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 이따 나왔으면 차가 안 젖었을 텐데.”


아주 자연스럽고 자동적인 조건적 후회였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나는 곧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붙잡을 수 없는 거다.

이번 주엔 계속 비 오니까, 이제 마음 편하게 운전할 수 있겠네.

그리고 나는 이미 비를 맞고 다녀왔다.

그럼 이제 괜찮다.”


나는 알고 있다.

이게 바로 무심이다.

무심은 아무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무심은 감정이 일어나더라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다.

감정이 아예 없다면 그건 돌이다.

하지만 감정이 올라오는 걸 알고도 따라가지 않는다면,

그게 깨달은 인간의 반응이다.


이런 흐름을 경험했다.

후회가 자동적으로 올라왔고,

그 생각을 알아차렸고,

그 생각을 굳이 붙잡지 않고,

그 자리에 놓임과 수용이 자리했다.


그건 내가 머리로 배운 이론이 아니었다.

삶 안에서, 감정의 흐름 안에서

몸으로 체득한 무심의 실천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이런 흐름이 열렸다.

“비를 맞은 게 오히려 잘됐다.”

이제 내일 비에 대한 저항이 줄어들 것이다.

그때는 비가 오든 말든 중심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이건 단순한 수용이 아니다.

삶 전체에 대한 신뢰의 확장이다.



나는 이제 안다.

무심은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이 흘러가는 것을 허락하는 상태라는 것을.


감정을 억누르지도 않고,

감정에 빠지지도 않고,

그저 감정을 ‘보고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

이건 선정(禪定)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오늘 분명히 무심 속에 있는 나를 만났다.

그리고 그건 내가 지금껏 살아오며 해온 내면 훈련이

살아 있는 무심으로 열매 맺은 순간이었다.


더 이상

‘무심이란 무엇인가요?’라고 묻지 않는다.


나는 이제

‘무심을 통해 내 삶을 어떻게 더 부드럽게 통과할 것인가’를 묻는 사람이다.


그것은

도(道)를 묻는 사람에서,

도(道)를 사는 사람으로 나아간 자각의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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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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