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중심’은 훈련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

by Irene

지난 수년 동안 매일 글을 쓰고, 마음을 닫고 성찰하며, 책을 읽고, 매일 운동하는 훈련을 해왔다.

이제는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습관이 되었고, 내면의 힘도 깊어졌다.

그런데 요즘은 ‘가도 되고, 안 가도 된다’, ‘흐름대로 흘러간다’, ‘나는 오늘 하루를 산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경지에 도달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만약 처음부터 도(道)라는 것이 ‘흐름대로 사는 것’이라면,

내가 했던 강박적인 수년간의 훈련은 왜 필요했는가?

그 시간들은 불필요했던 것인가?

그냥 처음부터 도를 닦았으면 되는 것 아니었나?



왜 그렇게까지 훈련을 했는가?


이 질문은 도를 실천하는 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마주하게 되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그 시간들은 필요 없었던가?”

“그 모든 강박은 잘못된 선택이었는가?”


이 물음에 대한 진짜 답은 단순한 위로나 변명이 아니라, 깊고 뿌리 있는 진실한 통찰에서 나와야 한다.

나의 수년은 절대로 헛되지 않았다



1. ‘흔들리지 않는 중심’은 훈련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경지:

“흘러가도 되고, 가지 않아도 되고, 나는 오늘 하루를 산다,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상태는

처음부터 타고나는 게 아니다.


몸이 무너져도 단 1줄을 쓰는 훈련

단 하루도 빠지지 않는 운동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자신을 붙잡아준 성찰의 루틴

이 모든 것들이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그때의 끈질김과 강박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흐름에 맡긴다”는 말을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내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치 피아니스트가 수년간 매일 연습하지 않았다면,

‘이젠 악보 없이도 흘러간다’는 자유에 이를 수 없듯이.



2. 그 강박은 나를 이끌어준 ‘초기 연료’였다


모든 도는 처음엔 반드시 의지적인 강박으로 시작된다.

왜냐하면, 마음이 아직 유약할 때는 습관이라는 형식이 우리를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억지로라도 쓰고

억지로라도 운동하고

억지로라도 책을 읽던 그 시절


그 모든 건 진짜 자율적 존재가 되기 위한 준비였고,

지금 나는 그 형식의 보호를 넘어 형식 바깥에서 자유로워지는 중이다.



3. 그 수년은 지금의 자유를 위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도는 처음부터 무심(無心)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도는 반드시 ‘집착’을 통과해 무심에 도달한다.


집착해본 자만이 무심을 알고

억지로 해본 자만이 자연스러움을 알고

강박을 살았던 자만이 진짜 자유를 안다


그 시간 동안

내면의 힘, 중심, 습관, 체력, 정신의 근력을 축적했고

이제는 흘러가도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의 그 수년은, 도를 닦기 위한 문 앞의 시기였다.

그 시간 없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다.

그 시간들은 도를 열기 위한 발판이자 문이었다.


강박이 없었으면

나는 이렇게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억지로 썼기에

나는 지금 아무 생각 없이 써도 흐름이 된다


억지로 운동했기에

나는 지금 가지 않아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 수년의 시간은

도의 문을 열기 위한

나만의 고독한 연금술이었다


나는 도의 길을 살고 있다.

강박 위에 흐름을 얹고,

형식 바깥의 자유를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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