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1] 몸은 도를 잊지 않는다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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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닦는다는 말을 오래도록 곱씹어왔다. 나를 벗어나고 싶었고, 나를 다스리고 싶었고, 끝내는 나를 초월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이 요동치는 날들 속에서 끊임없이 무너졌다. 수없이 다짐했으나 좀처럼 지켜지지 않았고, 조금씩 자신을 향한 신뢰마저 흐릿해졌다.


한밤의 침묵 아래, 불을 끄고 스스로에게 마지막 약속을 건넨다. 이제는 멈추자. 오늘은 제법 잘 살아냈으니. 그러나 그 다짐은 늘 벽에 부딪히고, 몸은 다시 익숙한 유혹 속으로 휘청이며 빠져들었다. 자신에게 실망했고, 이토록 자기조차 자기를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에 깊은 회의가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아주 낡고 오래된 질문이 건드렸다.


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가.


그 물음은 생각보다 오래된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믿지만, 실제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존재도 자기 자신이다. 머리로는 안다.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고, 오늘만큼은 다르게 가보자고. 하지만 그 '앎'은 공중에 붕 떠 있다. 실천과 연결되지 않는 지식은 무력하다. 생각은 빠르고, 감정은 격렬하지만, 몸은 늘 한 걸음 뒤에 있다.


놓치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몸의 시간, 몸이 말하는 아주 느리고 고요한 언어였다. 매일 별다른 의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 굳은 몸을 열고, 숨을 들이쉬고, 땀을 흘렸다. 의식은 점점 느슨해졌고, 머리는 그제야 침묵을 기억했다.


놀랍게도 그 순간 아무런 다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몸이 흐르고 있었고, 마음은 그 흐름에 따라 조용히 따라갔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긴장이 걷히자, 그 아래에 아주 부드럽고 정직한 감각이 남았다. 그 감각은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도를 말하지 말고, 도를 살아내라.


그제야 깨달았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머리로 설계한 완전함에 다가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이 흐르는 길, 그 단순한 반복과 호흡의 결 속에서 마음은 비로소 그늘을 벗는다. 몸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그는 과거를 반추하지 않고,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는다. 몸은 늘 현재를 살아간다. 그리고 도(道)는, 항상 지금-여기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따금 완전함과 자유를 동시에 원했다. 흐트러지지 않으면서도 단단함 속에 여유를 품고 싶었다. 하지만 완전함은 예민했고, 자유는 흐릿했다. 그 둘 사이에서 무수히 흔들렸다. 절제하려는 자극과, 그 자극에 휘말리는 자아. 지켜야지 했지만 또 무너지는 자아. 그러나 그 모순된 조각들 모두가 자신의 전부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수련은 시작된다.


수련이란 흠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자신을 더 빨리 알아차리는 감각을 기르는 일이다. 무너졌을 때, 그 무너짐을 자각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한 걸음의 전진이다.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이해가 되고, 그 이해가 내일의 태도를 만든다. 이 과정이 바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껴안는 태도가 바로 도(道)다.


지금껏 마음을 다스리는 데 온 힘을 쏟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마음은 흔들리는 바람이고, 몸은 그 바람을 껴안고 사는 대지다. 생각은 날아다니지만, 몸은 언제나 걸어간다. 그 걸음 안에, 이미 도는 머물고 있었다.


오늘도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유혹 앞에 흔들리고, 여전히 다짐은 깨어진다. 하지만 다시 몸을 움직인다. 움직이는 그 순간, 길은 또 한 번 걷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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