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연주한다.
그것은 반복이 아닌, 조율이다.
늘 같은 듯하지만 조금씩 다른 온도와 리듬,
그 안에서 나만의 음을 찾아간다.
아침이면, 조용히 책상 앞에 앉는다.
펜을 들고, 나에게 말을 건다.
내가 나에게 쓰는 편지,
그 문장 속엔 외부의 소음이 사라지고
단 하나의 목소리, 나의 진심만이 남는다.
마음의 결은 늘 숨겨진 주파수로 움직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듣고자 하면 들린다.
매일 그 미세한 떨림을 붙잡아
종이 위에 가만히 눕힌다.
이것은 습관이 아니라 의식이다.
존재를 기록하는 행위이며,
존재에게 묻는 행위다.
"오늘의 너는 무엇을 느끼고 있니?"
"네 진실은 어디에 머물러 있니?"
그 물음에 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때로는 문장으로,
때로는 숨소리로,
때로는 몸의 움직임으로.
내 몸이 들려주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몸은 언어보다 먼저 진실을 말한다.
오늘은 어디가 무거운지,
어디가 가벼운지,
움직임의 끝에서 비로소 내 감정을 깨닫는다.
운동은 내게 수행이다.
기능의 강화가 아니라, 감각의 정화다.
땀이 흐를수록 마음의 먼지도 씻겨나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
하늘은 어제와 같은 높이인데
오늘은 왠지 더 투명해 보인다.
그럴 땐, 말없이 안다.
“아, 지금 살아 있구나.”
머무는 공간 또한 내 안의 사원(寺院)처럼 다룬다.
깨끗하게 정돈된 방,
바닥에 흩어진 것들을 주워 제자리에 두는 일은
곧 마음의 파편들을 매만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를 정리하고,
삶을 닦는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이 정도면 정말 괜찮아. 잘하고 있어.”
하지만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조금 더 맑은 감각,
조금 더 이상적인 균형,
조금 더 선명한 의식 상태 —
그 ‘조금 더’는
이미 충분한 지금을 향해 살짝 기대어 앉아 있는 그림자 같다.
안다.
그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지금의 나를 사랑하기에
그 사랑을 더 깊고 맑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또한 안다.
완벽은 닿을 수 없는 별과 같다는 것.
그 별을 바라보며 걷는 여정 자체가
나에게 음악을, 문장을, 삶의 형태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오늘도 글을 쓰고,
몸을 움직이고,
공간을 정돈하며,
나에게 묻고,
나에게 듣는다.
삶을 사랑하는 방식은
이렇듯 눈에 잘 띄지 않는 의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무수한 조율 끝에
오늘의 음을 연주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지금 이 음이
지금 이 감각이
아름다워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