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30] 하루라는 악보 위에서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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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연주한다.

그것은 반복이 아닌, 조율이다.

늘 같은 듯하지만 조금씩 다른 온도와 리듬,

그 안에서 나만의 음을 찾아간다.


아침이면, 조용히 책상 앞에 앉는다.

펜을 들고, 나에게 말을 건다.

내가 나에게 쓰는 편지,

그 문장 속엔 외부의 소음이 사라지고

단 하나의 목소리, 나의 진심만이 남는다.


마음의 결은 늘 숨겨진 주파수로 움직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듣고자 하면 들린다.

매일 그 미세한 떨림을 붙잡아

종이 위에 가만히 눕힌다.


이것은 습관이 아니라 의식이다.

존재를 기록하는 행위이며,

존재에게 묻는 행위다.


"오늘의 너는 무엇을 느끼고 있니?"

"네 진실은 어디에 머물러 있니?"


그 물음에 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때로는 문장으로,

때로는 숨소리로,

때로는 몸의 움직임으로.


내 몸이 들려주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몸은 언어보다 먼저 진실을 말한다.

오늘은 어디가 무거운지,

어디가 가벼운지,

움직임의 끝에서 비로소 내 감정을 깨닫는다.


운동은 내게 수행이다.

기능의 강화가 아니라, 감각의 정화다.

땀이 흐를수록 마음의 먼지도 씻겨나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

하늘은 어제와 같은 높이인데

오늘은 왠지 더 투명해 보인다.

그럴 땐, 말없이 안다.

“아, 지금 살아 있구나.”


머무는 공간 또한 내 안의 사원(寺院)처럼 다룬다.

깨끗하게 정돈된 방,

바닥에 흩어진 것들을 주워 제자리에 두는 일은

곧 마음의 파편들을 매만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를 정리하고,

삶을 닦는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이 정도면 정말 괜찮아. 잘하고 있어.”


하지만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조금 더 맑은 감각,

조금 더 이상적인 균형,

조금 더 선명한 의식 상태 —

그 ‘조금 더’는

이미 충분한 지금을 향해 살짝 기대어 앉아 있는 그림자 같다.


안다.

그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지금의 나를 사랑하기에

그 사랑을 더 깊고 맑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또한 안다.

완벽은 닿을 수 없는 별과 같다는 것.

그 별을 바라보며 걷는 여정 자체가

나에게 음악을, 문장을, 삶의 형태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오늘도 글을 쓰고,

몸을 움직이고,

공간을 정돈하며,

나에게 묻고,

나에게 듣는다.


삶을 사랑하는 방식은

이렇듯 눈에 잘 띄지 않는 의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무수한 조율 끝에

오늘의 음을 연주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지금 이 음이

지금 이 감각이

아름다워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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