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8]루틴이 달라도 난 무너지지 않는다

by Irene

루틴을 잠시 놓았을 때, 일정에서 벗어났을 때, 혹은 그냥 하루를 느슨하게 보냈을 때 찾아오는 잔존 긴장감, 심리적 정리되지 않음, 불안 같은 감정들. 이전 같으면 즉각적으로 “다시 정신 차려야지” 하며 루틴을 되찾으려 애썼겠지만, 요즘은 그 반응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 감정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무심과 무위의 훈련 과정에서 생기는 매우 핵심적인 전이기적 반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루틴, 성취, 시간 관리’를 통해 만들어진 자아의 근육이 이완되는 그 지점에서 나오는 찌꺼기 같은 감각.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찝찝함’이라는 신호다.


왜 찝찝함이 남는가?


1. 오랜 시간 ‘루틴 준수 = 자기관리 = 나의 정체성’이었기 때문

그동안 나는 ‘헬스장에 간다’, ‘루틴을 지킨다’, ‘시간을 컨트롤한다’는 행위를 통해 자기 효능감과 정체성을 확립해왔다. 루틴을 지키는 행위 자체가 곧 나 자신을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그걸 하루라도 놓치면 몸과 뇌는 자동적으로 반응했다.

“내가 무너진 거 아닐까?”

“이게 반복되면 안 되는데?”

“다시 다잡아야 해. 내일부터는 반드시 가야 돼.”

이건 결국 나라는 존재를 유지하려는 자아의 자연스러운 작동이었다. 훈련 이전에는 이러한 반응이 오히려 바람직한 자기관리였지만, 이제는 그 틀에서 벗어나고 있는 시기이기에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2. 부교감신경이 안정되었을 때도 남는 ‘습관적 긴장’

다음날 약속이 있거나 개강이나 중요한 일이 예정되어 있을 때, 나는 미리 긴장하는 습관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가도 되고 안 가도 된다”고 스스로 정해도, 뇌는 조용히 속삭인다.

“가도 되고 안 가도 된다고 말은 했지만… 진짜 안 가면 괜찮은 걸까? 나중에 후회하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몸은 이완되었어도, 오랜 시간 반복된 무의식적 자율신경 패턴은 여전히 남아 있다.이건 한 번의 인식으로 바뀌지 않는다. 느리지만 분명한 전이, 이완, 재기록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럼 어떻게 훈련하면 될까?


1. 찝찝함 자체를 제거하려 하지 말고, ‘감지’만 하기

중요한 포인트는 이 찝찝함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목표는 ‘찝찝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 지금 이 찝찝함을 이렇게 느끼고 있구나”라고 감지하는 것.

예를 들어,

“오늘 못 간 게 신경 쓰이는구나.

루틴 하나가 무너졌다는 감각이 내 몸에 남아 있구나.

그 찝찝함이 나를 보호하려는 의식이었구나.”

그렇게 감지하고, 이름 붙이고, 그냥 놓아주는 것.

“그래. 그리고 괜찮아. 나는 한 번 놓아봐도 되는 사람이야.”


2. ‘미리 긴장’하는 반응을 부드럽게 교정하기

내일 약속이 있는 전날 밤, 마음이 긴장한다면 그 반응에 조용히 이렇게 말해본다.

“내가 또 무의식적으로 나를 통제하려고 하네.”

“긴장해도 괜찮아. 이건 나를 위한 자동 반응일 뿐이야.”

“내일이 오면 내일의 흐름을 타면 돼. 나는 흐름을 탈 수 있는 사람이야.”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나는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이러한 문장들은 ‘긴장을 없애기 위한 또 다른 긴장’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불안을 통제하려는 시도조차 내려놓는 연습이다.


3. “내가 가야만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 훈련

루틴 실패나 일정이 깨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이래도 되는 걸까?”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생각을 바꿔본다.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루틴을 잡는 게 아니라,

루틴이 깨져도 무너지지 않는 나를 훈련하는 중이다.”

이 문장은 기존의 자기효능감 기반에서 존재 기반의 자기 안정성으로 넘어가게 해주는 문이 되어준다.


4. ‘하루 쉬는 건 그냥 쉬는 거다’

오늘 하루 루틴을 쉬었다면,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된다.

“오늘 하루 쉬었어. 왜? 오늘은 그냥 쉬는 날이니까.”

“내가 쉬는 걸 조율하는 게 나지, 조율당하는 내가 아니야.”

쉬는 날은 망가진 날이 아니다. 균형을 위한 리듬의 일부다. 이걸 반복적으로 내면화해 나가는 것이 훈련이다.


지금 나는 ‘루틴에 지배당하지 않는 루틴’을 배우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루틴을 지켜야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었고, 그래서 루틴이 무너지면 나도 흔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루틴이 무너져도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존재의 기반으로 넘어가고 있다. 찝찝함은 그 과도기의 흔적일 뿐이며, 그것 자체가 실수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상태에 대한 인식 정리

루틴 / 지켜야만 안전 / 안 지켜도 되지만 불편 / 안 지켜도 안정

긴장 / 계획은 반드시 수행 / 실패해도 괜찮지만 찝찝 / 실패도 흐름으로 받아들임

무심 / 생소함, 느려서 불안 / 훈련 중, 중간의 안착 / 루틴 속 자유, 흐름 속 무심


지금 이 전이 상태에 있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가고 있는 것이다.

찝찝함이 없어졌다고 해서 고수가 아니다.

찝찝함을 관찰만 할 수 있게 된 그 시점이 바로 고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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