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2]어떤 선택이 나를 고요하게 하나?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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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이 나를 고요하게 하나

훈련은 무언가를 잘하게 되는 과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통찰을 더 선명하게 하는 과정에 가깝다.


어떤 감정에 반응하고,

무엇에 흔들리고,

어디에 오래 머무르는지를 관찰하는 순간들.


이 미세한 알아차림이 반복될수록

나는 나의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다.

즉, 나는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비추는’ 것이다.


무심과 무위는 절대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날은 움직이지 않음으로,

어떤 날은 단호한 행위로 드러난다.


그 기준은 언제나 ‘윤리적 선악’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조화와 고요함이다.


오늘의 나는 무엇이 진짜 무위일까?

침묵인가, 말하는 용기인가?

머무는 것인가, 한 걸음 내딛는 것인가?

그 물음은 날마다 새롭게 떠오르며

나를 갱신시킨다.


나는 더 이상 ‘무엇을 선택했는가’에만 머물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 선택이 나를 얼마나 고요하게 했는가?”


결정이 나를 분열로 이끌었는지,

아니면 통합으로 이끌었는지를 바라본다.

몸과 마음이 정제되었는지,

혹은 뒤엉켜버렸는지를 느껴본다.


그리고 다음 선택은

그 고요한 깨달음 위에서 다시 조정된다.

이 반복되는 미세한 조율이 바로

삶 속에서 도(道)를 실천하는 방식이다.


실패와 후회도 도의 일부다.

무심이란 선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덜 흔들리게 만드는 것이고,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불필요한 움직임을 덜어내는 방향성이다.


내가 했던 잘못된 선택조차,

고요히 반추하고 정제하는 순간,

그 또한 길이 된다.


나는 오늘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고요는 몸에서 어떻게 느껴지나요?”


그것은 맥박의 리듬인가?

근육의 이완인가?

사고의 정적 상태인가?

혹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한

깊은 수용과 존재의 확장인가?


이 질문을 따라

나는 ‘개념으로서의 고요’가 아니라

살아있는 행위로서의 고요를 살고자 한다.


고요는 도달하는 곳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자각하는 태도다.


그리고 오늘 나는 문득 이런 자각에 다다른다.

지금까지의 훈련은 어쩌면,

‘내가 얼마나 후회 없는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집착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옳았는지, 얼마나 잘했는지,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것이었는지,

그 결과에 스스로 납득하려 애써왔던 것 같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후회는 늘 마른 이슬처럼 찾아온다.

피하려 해도, 지우려 해도,

한 번은 반드시 지나간다.


진짜 훈련이란

그 선택을 통해 나는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가,

다음엔 어떻게 더 효율적이고 깊이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흐름을 평생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무심이 무엇인지,

무위가 무엇인지,

무아와 도의 길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작은 답이, 바로 그 안에 있다.


결국 모든 훈련의 핵심은 하나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선택이 나를 고요하게 만드는가.”


이 물음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 물음에 조금씩 귀 기울이며

하루하루를 더 투명하게 살아내는 것.


그 고요한 선택들이 쌓여

나를 나답게 만들고,

그 길이 곧 도의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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