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5] 감정의 중심을 지키는 훈련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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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계는 소리 없이 스며든다.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존재는 어느 순간부터 조용한 무게가 되어 하루의 흐름에 미세한 균열을 만든다.


처음엔 알아차리기 어렵다. 말이 없으니 무례한 것도 없다. 행동이 없으니 침범이라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하지만 반복되는 기척은 내 안의 리듬을 서서히 뒤흔든다. 주의를 끌지도 않았는데, 어느샌가 나의 주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고, 의도를 묻기도 전에 내 감정은 이미 파문처럼 일렁이고 있다.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건 정말 문제가 되는 걸까? 내가 너무 민감한 걸까? 아니면, 이 조용한 침투가 이미 나를 흔들고 있는 걸까?’


그러다 문득, 감정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좋은 의도라는 말로 포장된 무게.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불편한 시선. 예의를 지킨 듯하지만 결국 나의 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온 존재들. 그들은 나를 침범하지 않지만, 분명히 나를 흐트러뜨린다.


말없이 반복되는 관심, 이름 붙일 수 없는 반응, 정면으로 다가오지 않기에 설명조차 어려운 응시. 나는 오늘, 그것들이 내 감정을 어떻게 흩뜨리는지 가만히 바라보았다.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을 확인하게 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을 신경 쓰게 된다. 무심한 듯 한 사람의 기척이 내 루틴의 틈에 미세한 금을 내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관계라는 이름으로 주고받는 가장 미묘한 작용일지도 모른다. 크고 격렬한 충돌이 아닌, 말없이 반복되는 작은 파동. 그것이 감정의 리듬을 건드리고, 나의 중심을 흔든다.


그 사람은 아마 그것이 얼마나 무례한 표현인지를 모를 수도 있다. 그저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표현이지만, 결국 그 사람의 그릇만큼 표현하는 것. 그래서 인간은 종종 타인의 감정 경계를 알지 못한 채 다가선다.


하지만 나는 이마저도 훈련이라 여겨본다. 누군가의 조용한 침투를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그 순간 내 안의 고요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그 사람을 밀어내거나 억지로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와는 별개로 나의 감정 자율성과 존엄을 지켜내는 일.


배제하지 않되, 사로잡히지 않고. 차단하지 않되, 침투당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되, 끌려가지 않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감정의 중심을 지키는 훈련이다.


오늘, 나의 중심을 더 바라보는 법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누군가는 친절한 말로, 누군가는 아무 말 없는 시선으로. 그리고 어떤 이는 '묻어남'이라는 방식으로 천천히 스며들기도 한다. 그 모든 방식 앞에서, 나의 감정이 어디까지 흔들리고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오는 연습을 한다.


누군가의 존재가 문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대신, 그 관계가 나를 어떻게 흔들었는지를 인식하고, 그로부터 다시 나를 정돈하는 법을 익혀가는 시간. 그것이 나를 위한 훈련이고, 그 훈련을 오늘도 조용히 이어간다. 마치 오랜 시간 무게를 견뎌온 돌이 다시 제자리로 가라앉는 것처럼. 파문을 남기되, 결국 다시 고요해지는 호수처럼.


이 글은, 나 혼자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며 흩어진 마음을 하나씩 주워 담는 과정이다.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는, 나만의 조용한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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