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4] 집착과 무심 사이의 경계에서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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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도록 반복해온 마음이 있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 그 의미 이상으로 깊게 매달리는 마음.

그것을 사람들은 집착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무너지는 나를 지탱하는 하나의 힘이었다.


무언가를 반복하고, 확인하고, 정렬하고, 놓지 않는 습관.

그 안에는 ‘해야만 한다’는 강박보다,

‘이것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내가 나일 수 있다’는 절박함이 더 가까웠다.


어떤 삶은 거기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텅 빈 내면을 가만히 마주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

그저 다시 반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이어붙였다.

지속된다는 것만으로,

존재의 형태가 유지되던 시절.


그런데 그 단단한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굳어버린 중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유지하려는 힘이, 흐르지 못하게 했고

붙잡고 있던 감정은 살아 있는 감각이 아니라 박제된 기억처럼 무겁게 남았다.


집착은 견고했지만,

그 견고함이 생명을 품은 구조였는지,

아니면 붕괴를 막기 위한 임시 구조물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시점이 온다.


그때 비로소 묻게 된다.

“나는 지금도 그것 없이는 무너지는 사람인가?”


그러나 버릴 수 없었다.

그 마음은 한때 나를 지켰다.

그러므로 손쉽게 ‘버린다’는 말조차 무례해 보였다.


무심을 말하는 이들은 가볍게 흘러가라 하지만,

흘러가는 일이 늘 자유롭지만은 않다.

기반 없이 흐르는 유연함은 사실상 붕괴에 가깝다.

무심은 결국, 단단히 감아 쥐었던 것을

제 손으로 천천히 풀어내는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지극히 섬세한 기술이다.


그래서 나는,

무심과 집착 사이의 미세한 결을 하루하루 어루만진다.


그렇게 보면

삶은 어쩌면, 단단한 응어리를 조금씩 유연한 결로 풀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붙잡는 힘과 놓는 감각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균형을 만드는 것.

한쪽으로만 기울면, 삶은 왜소해지고

다른 한쪽으로만 쏠리면, 삶은 흩어진다.


무엇에도 매이지 않으려는 마음조차

어떤 순간에는 새로운 형태의 집착이 된다.

그러니 결국 중요한 것은,

‘집착하지 않으려는 유연함’이 아니라,

‘집착이 지나간 자리에 피어나는 새로운 감각’을 감당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나는 이제 안다.

무언가를 반복하던 나,

그 반복 속에서 의미를 찾던 나,

그것이 나를 지탱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그 단단함 위에 조금씩 틈을 내어, 바람이 스며드는 구조로 만들어가려 한다.

무너지지 않고도 열려 있을 수 있는 구조.

흩어지지 않고도 흐를 수 있는 감각.


삶은 그렇게 단단함과 투명함 사이를 왕복하는 섬세한 진자 운동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를 다시 지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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