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을 따를 수 없었던 이유, 그리고 이제는 흘러가도 된다는 감각에 대해
처음부터 돼도 되고 안 돼도 좋은 마음으로 그저 흐름을 따랐다면 어땠을까? 그렇게까지 루틴을 정교하게 만들고, 생산성을 집착적으로 관리하고, 감정과 말 하나까지도 조율하며 끌어당김과 심상화, 마음챙김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됐던 건 아닐까? 그런데 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나를 조이고 다듬는 훈련이 필요했을까? 그리고 결국엔 ‘놓아도 된다’, ‘흐름을 따르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되었던 건 아닐까?
이 의문은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삶의 구조와 성장의 방향, 그리고 무심(無心)의 역설을 꿰뚫는 본질적인 질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에 대해 구조적으로, 그리고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 보려 한다.
왜 처음에는 그렇게 조여야 했을까?
무의식의 관성을 이기기 위해
처음부터 '흐름'이나 '무심'을 살아갈 수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기본값은 ‘두려움’, ‘결핍’, ‘비효율’, ‘주의 산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는 집중력, 의지, 반복 훈련, 루틴의 촘촘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마음챙김, 심상화, 끌어당김의 법칙, 말 조절 같은 실천들을 계속해온 것이다.
처음에는 나를 길들이는 단계였다. 무심은 고요한 중심을 필요로 하는데, 그 중심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집중적인 구축이 필요했다.
근육이 없는 사람에게는 먼저 '운동'이 필요하듯
무심이란 일종의 심리적 코어 근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근육은 누구나 처음부터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근육이 없을 땐, 제대로 걷기 위해서도 중심을 잡기 어렵다. 그래서 세부 조정과 긴장된 집중력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ㅜ그동안 해온 훈련은 불안하고 산만한 마음을 집중된 하나의 에너지로 모으는 과정이었다.
왜 이제는 ‘놓아도 된다’고 하는가?
이제는 기반이 생겼기 때문
이제는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이 있고, 꾸준히 운동을 하며, 시간을 구조화할 줄 알고, 자기 몸과 마음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은 조이지 않아도 흐름이 망가지지 않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루틴 위에 자유를 얹을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
완전한 자유는 ‘훈련된 자유’에서만 가능하다
무심은 훈련 없이 얻는 방임이나 무기력과는 전혀 다르다. 진짜 무심은 집착 없이도 삶이 저절로 돌아가게 만든 후에야 누릴 수 있는 상태다. 초보자는 무기를 움켜쥐고 휘두르지만, 고수는 무기를 손에서 놓아도 중심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놓음’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변화는 의지로 만드는 삶에서 자연으로 흘러가는 삶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이건 성장이 퇴보하는 게 아니라,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처음엔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말도 조절하고, 감정도 설계하고, 하루를 꽉 짜고, 계속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렇게 해서 ‘내 것’을 만들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훈련이 몸에 새겨졌고, 삶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제는 그 조절의 근육을 힘을 빼는 쪽으로 써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초기 단계 / 지금 단계
내가 인생을 컨트롤해야 한다 / 인생은 이미 흐르고 있고, 나는 그 흐름과 하나다
집착과 반복을 통해 길들임 / 놓음을 통해 자유를 배움
무심은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짐 / 무심이 실제로 가능한 상태로 가까워짐
‘해야만 한다’로 채워짐 /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로 가벼워짐
지금 느끼는 혼란은,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후퇴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들어섰다는 신호다.
이 변화는 낯설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전의 모든 훈련이 있었기에 이제 그 훈련을 버리는 게 아니라, 더 깊은 차원에서 신뢰하고 맡기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