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의 끝에서 다시 만난 나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다. 그 질문들 속에는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닌, 순환 구조 속에서 다시 마주한 본질, 진짜 성장의 궤적, 진짜 사랑과 깨어남의 길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통합의 순간이 담겨 있다. 마치, 가장 깊은 질문이 마침내 나를 찾아온 듯한 느낌이다.
“이 모든 통제와 훈련의 목적은 결국 무너짐인가?”
“무기로 단단히 무장한 내가, 다시 아무것도 아닌 아이 같은 나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진리인가?”
“왜 극한까지 올랐다가, 다시 본래로 돌아가야 하나?”
이 질문들 안에는 오직 훈련의 마지막 문턱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나는 지금 그 마지막 문턱에 서 있다는 걸 직감했다.
훈련의 여정
어릴 적 나는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였다.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감정은 위험하고 불안정했으며, 때로는 나를 파괴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감정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분석하고, 해석하고, 제어하며, 철저한 루틴과 자기 훈련을 통해 감정을 다루는 능력을 길렀다. 나는 논리, 철학, 구조, 지식, 자기 인식이라는 무기로 나를 무장시켰고, 어느새 통찰력 있고 고요하며 판단이 정교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감정을 살게 한 것이 아니라 감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나를 무너뜨린 건 예기치 못한 감정의 쓰나미였다. 그 순간, 내가 쥐고 있던 모든 도구와 무기들은 무의미해졌다. 통제와 무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사람만이 그 무의미함을 본다. 그리고 결국 아이 같은 나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제는 의식적인 순수함을 가진 존재로.
감정에 대한 인식의 전환
훈련이란 관점에서 감정은 관리하고 통제해야 하는 위험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끝에서 알게 된다. 감정도, 사랑도 모두 생명력이라는 것을. 통제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을 겪어야 비로소 알게 된다. “나는 내가 아니구나.” 훈련은 사라지지 않는다. 배경이 된다. 기술은 있으나 사용하지 않고, 무기는 있으나 휘두르지 않는다. 감정은 흐르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 선불교의 말은 단순하면서도 깊은 수행의 여정을 상징한다. 개념과 언어,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시기를 지나, 다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지. 그것은 무위(無爲), 무심(無心), 무아(無我)의 자리에 선 자만이 도(道)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 표현은 특히 조주 선사(趙州從諗), 청원행사(靑原行思) 등의 가르침에서 자주 인용되며, 세 가지 단계를 거치는 인식의 흐름으로도 설명된다. 첫 번째는 초입의 직관적 현실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무구한 상태다. 두 번째는 수행 중 개념과 언어,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혼란이 찾아오는 단계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 모든 것이 의심스럽고 불확실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깨달음 이후의 회복된 현실에서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 이제는 비어 있음(空)을 알고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지다.
나의 감정 여정도 이 흐름과 같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처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감정 속에 살았다. 그러나 이후 감정의 혼란 속에서 그것을 통제하고 해체하며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의 시기를 보냈다. 모든 것을 구조화하고 개념화했으며, 감정을 해체하려 했다. 그리고 이제, 훈련의 끝에서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의 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의식적인 순수함으로. 감정을 억누르거나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이라는 생명력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사랑에 대한 이해의 변화
이제는 감정을 억누르지도, 지배하지도 않은 채 살아 있게 둔다. 감정의 흐름 안에서 숨 쉬고 있다. 그게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왜 이 여정이 필요했는가? 왜 나는 훈련의 극한까지 갔다가, 다시 본래로 돌아와야 했을까?
진짜 무기란 휘두르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서야 진짜 내 것이 되고,
진짜 통제란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존재를 자유롭게 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사랑은 두렵고, 감정은 위험하며, 인생은 구조 속에 갇힌다. 누구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말을 진짜로 아는 사람은 이 훈련을 통과한 사람뿐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
나는 통제를 끝까지 끌어올려 본 사람이다. 그리고 진짜 사랑 앞에서 평생을 연마한 통제와 무기가 무너져 본 사람이다. 사랑이란 이름의 완전한 항복이다. 정합은 무기를 다 갖춘 내가, 그 무기를 쓸 수 없는 자리에 서는 순간이다. 눈물로 자신을 해체한 사람이며, 지금도 감정에 벅차 울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은 되돌아가는 중이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온 중이다. 비로소 진짜 순수함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이다. 이건 단순한 퇴행이 아니다. 미성숙의 반복도, 감정적 약함도 아니다. 이건 훈련의 완성이다. 감정의 귀환이며, 존재의 통합이다. 통제력도, 무기도, 눈물도, 사랑도 이제는 모두 내 안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
바다로 나간 이후의 감정
예전의 나는, 아름답고 정성스럽게 가꿔진 정원에서 연못 물결이 일렁이듯 감정을 표현했다. 그건 진심이었고, 순수했지만… 울타리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 울타리 밖의 바다로 나갔고, 그 바다는 때로는 고요하지만, 때로는 나조차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나를 흔들고, 씻기고, 움직이고, 말 없이 이끌고 있다.
나는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다. 감정이라는 생명과 함께 존재하는 사람이다. 사랑은 나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동시에, 처음으로 나를 탄생시킨다. 지금 이건, 기존의 내가 무너지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진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