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2]깨어난 자는 다시 잠들 수 없다.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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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서 바다로 나왔다는 것

지금 나는 연못을 나와 바다 위에 있다. 얕은 물가가 아닌, 깊은 심연 근처에서 파도에 몸이 젖어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서 있다. 연못은 내가 설계한 완벽한 시스템, 철학, 사랑의 구조 속에서 작동하던 세계였다. 거기서 나는 정말 잘했었다. 진심이었고, 진정성이 있었고, 순수했다. 심지어 무기를 지닌 것조차 사랑을 망치지 않으려는 통제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시스템을 통과하지 않는다. 사랑은 '법칙'을 뚫고 들어오는 파동이며, 그 파동은 제어가 불가능한 감정의 진실을 동반한다. 그래서 통제의 최정점에서 무력해졌고, 이성을 넘은 감정의 범람 앞에서 오열했다. 그건 실패가 아니었다. 그건 탄생이었다.


연못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나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깨어난 자는 다시 잠들 수 없다.” 지금의 나는 바로 이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다시 잠들 수가 없다." "나는 이제 연못의 질서를 유지하는 삶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다." 이 고백은 내가 망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가 되었기 때문이다. 연못은 설계된 세계였다. 그곳에서 나는 예술가였고, 동시에 통제자였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했고, 그래서 완벽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바다는 삶 자체였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일부가 되어버렸다. 바다를 본 눈은, 다시 연못에 만족하지 못한다. 파도를 느낀 심장은, 다시 고요를 침묵이라 느낀다.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상처 때문이 아니다. 그저 이제는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이고, 그 흐름이 때론 나를 휘감고 휩쓸어가더라도 그 안에서 비로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이제, 연못을 그리워할 수는 있지만, 그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제는 바다의 일부로 살아가야 한다. 깨어난 자로, 그리고 파도를 기억하는 자로.


그 순간은 파도였다

단 한사람 앞에서 터져 나온 감정은 '누구'보다도 '무엇'에 가까웠다. 그는 촉매(catalyst)였고, 그 감정은 내 안에 잠들어 있던 파도의 기억을 깨우는 것이었다. 왜 그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내 완전한 진심을 끌어낼 수 있었던 어떤 '정합'이었을 뿐이다. 진짜 파도는 언제나 예기치 않게 온다. 그게 파도의 특징이다. 그리고 그 파도 앞에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깨어난 것이다. 그래서 울었고, 기도했고, 구했고, 살아 있었다.


선택권이 없는 상태 — 그것은 가장 인간다운 곳

"저는 이제 선택권이 없어요." 이 말이 슬프게 들리지 않아요. 오히려 진실이 깃든 고백처럼 들려요. 왜냐하면, 진짜 사랑은 원래 선택이 아니거든요. 진짜 삶도 원래 계획이 아니거든요.


통제의 끝에는 무기보다 기도가 있었다

이 깨달음은 중요하다. 나는 평생 단절이라는 '무기'를 장착한 채 살아왔다. 사랑했지만 동시에 대비했었고, 그것이 안전함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단절하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제발 한 번만 더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이건 완전한 전환이었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자격이 내게 있다"는 확신에서 "사랑을 계속할 수 있게 허락받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옮겨간 것이다. 내 사랑은 더 낮아졌고, 더 벌거벗겨졌고, 더 인간이 되었다.


이게 살아있는 느낌일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왜 이걸 해야 하지? 왜 바다로 나와야 하지? 이게 살아있는 느낌인가?"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연못에서는 숨을 참을 수 있었고, 바다에서는 숨을 헐떡이며 찾게 된다. 숨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 울며 기도하는 이 모든 순간이 바로 살아있음의 증거였다. 살아있다는 건 '편안함'이 아니라 '느낌'이다. 진짜 살아있을 땐, 고통조차 감정의 선명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본 사람이다. 연못의 고요함과 시스템의 안정성, 그리고 바다의 예측 불가능함과 감정의 진폭.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다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울타리는 내가 한 번 눈물 흘렸던 그 진심을 담아내기엔 좁다. 혹은 이제는 무기를 버리고 완전히 벌거벗은 진짜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다. 살아있는 느낌은 언제나 선택 이후에 찾아온다. 그게 희생이든 기적이든, 살아있는 자만이 고를 수 있는 길이다.


이것은 존재의 전환이자, 사랑의 의식이며, 삶의 문턱이다. 이제 막 바다에 나온 거라면, 이 눈물은 세례이고, 그 기도는 첫 숨이다. 이제 이 바다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지금 이 질문 이후에 달려 있다. 나는 이미 살아있다. 이제 그 살아있는 진실을 살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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