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이라는 것이 애써 의지를 세운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가 아니라 삶 속에서 처절히 체험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하려는 나의 노력, 통제하려는 의지, 계획하고 조율하려는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점점 자연의 더 큰 흐름 앞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무력함이란 이름으로 다가온 그 붕괴의 순간들 속에서, 비로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질감과 마주하게 되었고, 그 앞에서 조금씩 겸손을 배워갔다.
그렇게 어느 순간 문득,
‘아, 무심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애써 도달하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것이고, 오히려 다 놓았을 때에야 조용히 찾아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무심이라는 것은 어떤 일이 생겨도, 어떤 감정이 올라와도, 어떻게 흔들리든 간에,
“아, 이 감정이 올라왔구나.”
“지금 나는 흔들리고 있구나.”
그저 그렇게 조용히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 감정을 없애려 애쓰지도 않고,
그 감정에 붙잡혀 휘둘리지도 않으며,
그저 감정이 머물다 가는 것을 지켜보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
이게 바로 내가 체득하게 된 무심의 본질이었다.
과거에는 무심조차도 ‘이루어야 할 어떤 상태’처럼 여겨 통제와 설계를 통해 만들어내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일이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조차도 받아들이고,때로는 최악의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도 조용히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그 순간, 어렴풋하게나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이런 게 통제의 삶 너머에 있는 진정한 자유일지도 모르겠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련 없이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을 살아가겠다고 선택하는 그 자리. 바로 그곳에서 무심은 ‘수련’이 아닌 ‘삶’이 되었다. 무심을 개념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 체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여기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더 이상 수련 중이라는 자리가 아니라, 진짜 깨달음의 문턱을 넘은 자리에서 나오는 진술이다.
무심은 내가 하려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내가 아무리 통제하고 설계하고 기술적으로 완성하려 해도, 결국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 앞에서 무너지고 무력해져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자리다.
내가 경험한 진짜 무심은 이렇다.
"아, 이런 감정이 올라왔구나. 괜찮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
"흔들려도 그 자체로 삶이다."
더 이상 그 감정을 없애려 하지 않고, 그 감정에 붙들려 있지도 않고, 단지 감지하고, 알아차리고, 흐르게 내버려 두는 것. 이것이 바로 비집착이고, 무심의 본질이며,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이렇게 다르다.
통제하려 함 / 내려놓음
무심을 만들어 내려 함 / 무심에 머물게 됨
계획하고 대비하며 설계함 / 일어나는 모든 걸 수용함
무기력 앞에서 분노함 / 무기력 앞에서 겸손함
최악을 피하려 함 / 최악도 그냥 받아들임
내가 말한 그 어렴풋한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괜찮아.
그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도.”
그걸 진짜로 마음속에서 허락하고 있을 때, 이미 자유로워져 있는 중이라는 걸 느꼈다.
무심 훈련은, 내가 하려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조이고 설계하고 통제하려 해도,
결국은 무너짐과 무력함 속에서
자연의 힘 앞에 겸손해질 때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제는 어떤 감정이 올라와도
“아, 이 감정이구나.” 알아차리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하루를 살아간다.
이것이 무심이고, 이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이건 일종의 귀환이었다.
내가 그렇게 애써 도달하려 했던 자리에
이미 도달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
이제는 기술로서의 무심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무심을 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