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2] 통제하려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by Irene

무심 훈련, 통제를 내려놓는 그 시작점에서

무심 훈련이라는 것이 결국은 통제의 정점에서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고 겸손해지는 바로 그 순간을 위한 것이라는 걸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훈련과 수련은 마치 계단을 오르듯, 정점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 정점에서 마주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통제할 수 없는지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전까지는 무심이란 단어를 ‘감정이 없는 상태’나 ‘욕망을 초월한 상태’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마치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 고요한 사람, 또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미지 속에 무심의 의미를 투영해왔다. 그러나 그런 식의 해석은 무심의 본질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무심의 훈련은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게 되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감정은 여전히 일어나고, 상황에 따라 반응도 생긴다. 중요한 건, 그 감정과 반응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억지로 통제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태도.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올라왔다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는 것. 그러면서도 그 한가운데에서 마음이 ‘머무르지 않는’ 상태. 바로 그것이 무심이었다.


통제하려 할수록 상황은 자꾸 어긋나고, 마음은 더 복잡해지고, 오히려 잡으려는 마음 때문에 더욱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끝내는, 내가 아무리 계획하고 수련하고 통제하려 해도, 완벽하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심은 통제를 내려놓는 그 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


가장 강력한 통제력은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연의 법칙은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며, 내가 아무리 계획하고 준비해도 인생은 그 계획과 다르게 흘러간다. 무심은 그 사실 앞에서 무력함이 아니라 겸허함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태도다.


어쩌면 무심이란 것은 삶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작은 나를 인정하고, 그 흐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며, 그 구분조차도 완전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훈련의 궁극은, 결국 내려놓음이다.


이것이 내가 무심 훈련을 통해 도달한 새로운 이해이다. 무심은 모든 것을 통제한 끝에 도달하는 고요한 절정이 아니라,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시작되는 마음의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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