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7] 진정한 힘은 놓을 수 있는 용기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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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언제나 ‘쥐는 것’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삶의 초입에서

흩어진 자아의 조각을 그러모으기 위해,

세계의 이음새를 단단히 붙들며 살아간다.


시간을 통제하고, 감정을 억제하며,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고,

경계 위에 자아를 세운다.

그 모든 수고는 본질적으로

‘흔들리지 않기 위한 투쟁’이다.


우연과 상실, 변화와 무질서—

삶이 던지는 그 끝없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인간은 움켜쥔다.

‘나’를 지키기 위해, 세계를 움켜쥔다.


하지만 역설은 언제나 정점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것을 얻었을 때, 모든 것을 통제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깨닫는다.

진정한 힘은 쥐고 있는 데 있지 않고,

놓을 수 있는 용기에 있다는 것을.


‘쥐는 행위’는 강인함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놓을 수 있음’은

그 강인함을 초월한 자유다.


그 자유는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해체하지 않고도 자기를 넘어서는 것이다.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는,

더 이상 오를 이유가 없음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내려설 수 있는 존재의 품격이다.


“완성은 늘 무언가를 더하는 데 있지 않고,

때로는 덜어내는 데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문장이 내 안에서 울린다.

이 깨달음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온 것이 아니다.

무수한 붙듦과 상실, 집착과 포기로 이루어진

삶의 파편들 속에서, 나는 천천히 배웠다.


내가 ‘붙잡았던 것들’이

결국 나를 붙잡고 있었음을.

내가 놓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를 놓지 않고 있었음을.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들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패배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내려놓음은 통제의 해체가 아니라,

통제를 넘어선 질서에 대한 믿음이다.

그 믿음은 나를 부드럽게 바닥으로 이끌었다.

그곳은 침잠의 끝이 아니라, 고요의 시작이었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처음으로

고요를 경험했다.

그 고요 속에서,

내가 아닌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비로소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 쥐고 있을 때는 세상을 만들었고,

놓았을 때는 자신을 발견했다. ❞


이것이 초월이다.

이것이 손을 놓을 수 있는 자의 힘이다.

그 앞에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때로 삶은, 그저 한 걸음 물러나

조용히 손을 놓을 용기를 요구한다.

그것이 진정한 강함의 시작이라는 것을

이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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