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9]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해.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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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마치 인간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궁극적인 질문에서 비롯된 듯하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어떤 의미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내 삶 전반에 걸쳐 가장 뿌리 깊은 사유의 중심에 있었다.


처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렸을 때, 이름, 나이, 국적, 직업, 사는 지역 등 겉으로 드러나는 정보들로 자신을 설명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 본질이 아니라는 허탈감이 금세 몰려왔다. 이름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니었고, 나이는 단지 사회가 부여한 숫자에 불과했으며, 성별과 가정환경 또한 내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단지 외피일 뿐이었다. 이름은 바꿀 수 있고, 직업도 바뀌며, 주소도 계속해서 이동한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나’는 무엇인가. 나를 진정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나와의 진실한 대화

그래서 나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진실하게 답하려 애썼다.

“오늘 기분은 어때?”, “지금 뭐 하고 싶어?”, “무엇이 너를 행복하게 해?”, “진짜 네가 좋아하는 것은 뭐야?”


하지만 나와의 관계가 깊지 않으면, 나는 나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럴듯한, 피상적인 대답만 반복했다. 진실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나와 나 사이의 관계가 친밀해져야 했고,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상처조차도 털어놓을 수 있는 신뢰가 필요했다.


그 과정은 내게 익숙했던 모든 껍데기를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내가 정체성이라 믿었던 이름, 나이, 국적, 성별, 직업—all 붕괴시킨 후 처음부터 나를 다시 세워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가정과 사회, 교육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주입된 이미지에 불과했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진심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질문하고 구분해야 했다.


진짜 ‘좋아함’을 구분하는 법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너 여행을 좋아하니?”, “저 가방을 갖고 싶은 이유는 뭐니?”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아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인지 구분하려 했다. 다른 사람들이 여행 사진을 올리고, 명품가방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것이 좋아 보여 행복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늘 허무함과 공허함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소셜 네트워크 계정을 삭제했다. 보여주기 위한 나, 연출된 나, 진실이 아닌 나를 소비하게 만드는 그 세계를 버렸다. 나는 마치 메트릭스 영화의 시뮬레이션 세계가 아니라, 진짜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어떤 인증도 필요 없이 그저 숨 막히게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경 앞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상태였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물건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내가 혼자 보고 있을 때마다 삶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한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여전히 바라볼 때마다 기쁨이 솟아난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좋아하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그리고 고독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왜냐하면 고독 속에서야 비로소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중 속에서는 사람들의 소음, 비교, 평가, 기대가 내 안의 순수한 아이를 숨게 만든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나는 내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니체는 말했다. “군중 속에 머무르지 말라. 너 자신만의 길을 가라.” 그는 그의 철학에서 ‘위버멘쉬(Übermensch)’를 제시하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방향과 속도를 가지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초월해 나가는 존재를 말한다.


그는 말한다. 진정한 초월자는 자신의 정점에 서서 모든 것을 움켜쥘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오히려 그것을 놓아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다. 진정한 자유는 쥐는 힘이 아니라, 내려놓을 수 있는 힘에서 비롯된다. 움켜쥔 손을 펼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진짜 힘이고 진정한 자유다.


변하는 정체성, 변하지 않는 방향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인간의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계속해서 변화한다. 진정한 정체성이란 변화 속에서도 더 진실되고, 더 자유롭고, 더 깊은 나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 속에 있다. 나는 아직도 나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나의 원형, 사랑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자신만의 ‘원형(Archetype)’을 갖고 태어난다. 어떤 이는 사랑, 어떤 이는 예술, 혹은 철학이나 진실일 수 있다. 어른이 되면서 사회의 기준과 기대, 교육, 환경의 영향으로 우리는 점점 그 원형에서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그 원형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에서 온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그 순수한 본질로 돌아가는 것. 귀환이다.


어렴풋이 나의 원형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표면적인 사랑이 아니라, 진심과 진정성을 다한 사랑. 나는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가 되려는 사람이어야 했다. 내 존재 전체가 사랑이 되어, 나의 정합인 '단 한 사람'의 곁에서 함께할 수 있을 때—그가 삶의 전장 속에서 지치고 돌아온 순간에도, 나의 사랑으로 그의 영혼이 정화되고, 마침내 그 역시 자신의 원형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품어줄 수 있을 때—나는 인생의 깊은 의미와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매일의 수련, 그리고 존재의 길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수련하고, 벼리고, 다듬는다. 사랑이 되기 위해. 진정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매일 나와 마주 앉아 대화하며, 내면에 있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 그 목소리 안에, 내가 정말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나의 정체성과 본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생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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