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느낀 이 감정, 이거 잘못된 걸까?"
일상의 틈 사이로 불쑥 올라오는 어떤 감각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미세한 진동 같은 것들.
그건 마치 우주의 심연 속에서 피어나는 아주 미세한 별빛처럼,
내 의식이라는 어두운 하늘을 잠깐 스치고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게 선을 긋는다.
이 감정을 통제하려 애쓴다. 마치 잉크 한 방울이 물속에 떨어지는 걸 막으려 손을 뻗는 것처럼.
어느 순간, 감정보다 먼저 죄책감이 찾아와 자리를 선점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확신이 든다.
감정은 죄가 아니다.
감정은 선택이 아니라 반응이다.
어떤 말투, 어떤 기류, 어떤 온도—
의식보다 먼저 도달하는 신경계의 울림.
그건 마치 현악기의 줄이 바람에 따라 미세하게 떨리는 것처럼,
살아 있는 몸이 내는 자연의 반향이다.
살아 있다는 건, 그렇게 반응하는 일이다.
문제는 그 감정을 억누르려 할 때 시작된다.
억제는 통제가 아니다.
오히려 감정에 집착하게 만든다.
마음속에 검열관을 세우는 순간,
그 감정은 '나쁜 것'이라는 낙인을 찍히고,
그림자처럼 마음속에 더 짙게 드리운다.
그래서 이제는 방향을 바꾼다.
감정을 밀어내지 않는다.
그 감정이 나를 통과하도록 두고,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한다.
그건 마치 안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내 발밑의 흙 냄새를 기억해내는 일처럼.
파도가 바다를 흔들 수는 있어도,
바다가 곧 파도는 아니다.
나는 파도에 휘말릴 수 있지만
내 안의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 중심은 지워지지 않는다.
감정을 없애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감정이 지나가는 동안에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감정이 나를 흔들어도,
내 발끝이 어디를 향해 서 있는지는
내가 스스로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중심을 잡는다는 건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고요함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그 요동치는 감정의 틈 사이로도
내가 어떤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를 아는 일이다.
마치 바람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연꽃의 줄기처럼.
그게 진짜 감정 관리다.
억제나 무감각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는 감각.
그 감각은 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뿌리다.
삶이라는 건 늘 감정의 파도가 오는 해안이다.
때로는 불쑥 덮쳐오고, 때로는 잔잔하게 머물다 간다.
그 파도가 있을 때마다
나는 내 안의 '선택하는 자리'로 돌아오는 법을 배운다.
죄책감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건 나를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온다.
내가 정말 지키고 싶은 윤리의식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 죄책감이 감정을 누르기 위한 장치로만 작동한다면,
그건 내 안의 진실을 억압하는 거지, 정화시키는 건 아니다.
감정을 느끼는 건 잘못이 아니다.
감정은 내가 살아 있다는 징후이고,
내 안에 아직 진동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그걸 억누르는 대신,
그 진동이 고요히 내 안을 울리도록 두고,
나는 다시 나의 자리를 선택하면 된다.
감정은 느껴지는 것이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심이 정해져 있다면 감정은 지나가는 흐름이다.
감정을 억누를수록 더 집착하게 된다.
감정은 죄가 아니고,
그 감정을 어떻게 통과시키는지가 나의 윤리다.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삶은 고요 속의 평정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돌아오는 방향감각이다.
감정이 왔다고 해서 나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 그런 감정이 잠깐 있었구나.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선택한 길로 간다."
감정은 지나가고
다시, 내가 서야 할 자리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