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되었을 때, 진짜를 보는 눈도 따라온다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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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되었을 때, 진짜를 보는 눈도 따라온다


존재의 뿌리에서 피어나는 진짜


인간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착각 중 하나는, 겉으로 그럴듯한 태도를 흉내 내면 상대방이 그 모습을 진짜로 믿을 것이라는 오만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진짜’와 ‘가짜’를 감지할 수 있는 정교한 센서를 가지고 있다. 단지, 때때로 그 감각을 외면할 뿐이다. 간절히 믿고 싶은 마음이나, 놓치고 싶지 않은 욕망이 눈앞에 있을 때, 인간은 스스로 그 감지 능력을 차단한다. 믿고 싶어서 믿고, 얻고 싶어서 속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순간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그 욕망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장막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비로소 우리는 맑은 시선으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사기의 구조는 대개 외부에서 보면 허술하고 단순하다. 그러나 그 안에 빠지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 피어오른 탐욕의 연기 속에서 스스로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진짜와 가짜는 무엇으로 구분되는가?


전략, 조심, 그리고 존재


“나는 지금 이 말을 계산해서 하고 있어. 이렇게 말해야 상대가 설득될 거야.”

이 단계는 분명 가짜다. 전략적 설계가 주도하는 존재다.


그다음 단계는 이렇게 말한다.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해.”

이것은 통제와 조율의 단계다. 완전한 가짜는 아니지만, 여전히 본능을 억누르는 중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더 이상 ‘조심’이라는 단어조차 필요 없어지는 지점이 있다. 존재 자체가 이미 정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지 않으며, 설계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곧 ‘존재’의 단계다.


이 세 단계는 단순한 성격의 차이가 아니다. 끊임없는 훈련과 자기 성찰의 과정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길이다. 수없이 반복하고, 조심하고, 통제한 끝에, 더 이상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즉,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마치 우리는 누구에게도 ‘숨 쉬는 법’을 배우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감지한다, 말보다 먼저


누군가 웃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안다. 그 웃음이 단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사회적 제스처인지, 아니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의 표현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말로 듣지 않아도 인간은 그것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본능의 센서’다. 우리는 언어를 해석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섬세하게는 존재의 결을 감지하는 존재다. 말은 위장할 수 있어도, 존재는 위장할 수 없다.


존재의 뿌리에서 피어난 꽃


이 모든 과정은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 훈련되지 않은 존재는 가지에 꽃을 '붙인다'. 보기엔 화려할지 몰라도, 그것은 뿌리로부터 영양을 받은 것이 아니기에 오래가지 못한다. 인위적으로 붙인 꽃은 결국 떨어진다.


그러나 훈련된 존재는 다르다. 그의 말, 표정, 리듬, 반응—모든 것이 존재의 뿌리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피어난 꽃인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조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아, 저 꽃은 진짜구나.”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조심하지 않는다. 그의 존재가 이미 충분히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은 계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인간관계는 단순해진다. 무엇을 보여주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상대를 설득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진실은 설명 없이도 전달되기 때문이다.


진짜가 되면 진짜를 본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이 말을 하는 의도가 있다면, 상대는 그걸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답은 언제나 ‘그렇다’이다. 인간은 알고 있다. 말의 표면이 아닌, 말 너머에 담긴 ‘존재의 진실’을 감지한다.


그러니 나의 목표는 단순하다.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 왜냐하면 존재 자체가 이미 진심이고, 정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나 또한 자연스럽게 상대의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그것은 의심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존재로부터 우러나온 선구안이다. 바로 이 지점이 내가 바라는 성숙의 한 형태다.


이 사실을 이해한 순간부터, 인생은 복잡하지 않다. 단순해진다. 무언가를 보여주려 애쓸 필요도 없고, 나를 설계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뿌리에서 피어난 꽃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가지에 꽃을 붙이고 있는가?

아니면 존재의 뿌리에서 피어난 꽃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https://medium.com/@irenekim1b/the-authentic-bloom-from-the-roots-of-being-54e1d06a5b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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