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즐기고 있었다.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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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은 책 속에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장면이 있었다. 프라이스 프리쳇의 《The Quantum Leap Strategy》라는, 얇지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그 책에는 한 마리의 파리가 유리창에 끊임없이 부딪히는 장면이 등장한다. 탈출하려는 의지로, 필사적으로 날갯짓하며 유리벽을 향해 돌진하는 파리.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편에는 조용히 열린 창문이 있었다. 파리는 그 열린 창을 결코 보지 못한 채, 눈앞의 유리만을 해답으로 믿으며 결국 생을 마감한다.


또 하나의 장면은 아기였다. 걷기를 배우려는 아기는 일어서려는 시도는 하지 않은 채, 기어 다니는 연습만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리 정교하게 기어가는 법을 익혀도, ‘일어서는 새로운 시도’ 없이는 결코 걷는 법을 배울 수 없었다.


나는 문득, 이 두 장면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이라는 개념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회가 정의한 성공의 틀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눈앞의 유리창만을 해답이라 믿으며 이마를 부딪혀왔을까. 이미 열려 있는 창문은 보지 못한 채 말이다.


그 질문은 나를 나에게로 돌려세웠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나에게 편지를 쓰고, 운동을 하고, 나를 성찰하고, 무의식을 들여다보며 어제를 돌아보는 삶. 나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이 모든 반복이 혹시 유리창을 뚫으려는 파리의 날갯짓은 아니었을까? 일어서기를 시도하지 않은 채 기어가는 법만 갈고닦는 아기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그 의심은 나를 잠시 멈추게 했고, 깊은 물음을 던지게 했다.


그러나 다시 내 삶을 조용히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열심히’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즐기고’ 있었다. 억지로 한 것이 아니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내면이 흔들리고, 글을 쓰지 않으면 나 자신이 흐려졌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중심이 무너지고, 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면 하루가 제대로 정렬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그 방식은 나에게 평온과 고요를 주었다.


이 모든 루틴은 내 내면을 다듬는 하나의 연주처럼 반복되었고,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나은 나로, 스스로를 흠모할 수 있는 존재로 조율하고 예술처럼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매일을 살아간다. 기계처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하듯 살아간다. 내 인생이라는 악보 위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나에게 편지를 쓰며 고요하게, 그러나 정렬된 울림으로 나를 만들어간다.


유리창 너머 열린 창문은, 사실 처음부터 나를 향해 열려 있었다.


https://medium.com/@irenekim1b/the-open-window-had-always-been-there-837f97c7b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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