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둘리지 않고 선택하는 사람의 방식
나는 그렇게 배워왔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좋은 사람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둥글게 대해야 한다고. 누군가에게 무관심하거나 선을 긋는 건 이기적이고, 차갑고, 못된 거라고. 그래서 어떤 때는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지었고, 도움을 주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스스로를 내어주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진짜 친절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건 나를 보호하지 못하는 친절이었고, 무례한 이에게조차 무방비로 문을 열어주는 허용에 가까웠다. 그 문틈으로 들어온 수많은 피로와 실망, 분노와 후회는 결국 내 안의 조용한 세계를 망가뜨렸다.
그 후로 나는 사람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아니,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의도'와 '태도'를 감지하는 법을 배웠다. 표정보다 에너지로, 말보다 결로,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내 안에 물었다. “이 사람은 내 고요함을 존중할 수 있을까?”, “이 접근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가, 아니면 나를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는가?”
그 질문에 명확히 "아니오"라는 감각이 오면, 나는 단 한 줄의 반응도 하지 않았다. 설명도, 감정도, 오해받지 않으려는 애씀도 버렸다. 그것은 무심함이 아니라, 나의 고요함을 지키기 위한 정확한 반응의 절제였다.
모두에게 따뜻해야 할 필요는 없다. 모두에게 공평해야 할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태도는 다르고, 의도는 같아 보여도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알아차린다. 진심과 욕망은 닮았지만 전혀 다르다는 것을. 존중과 관심은 비슷해 보이지만, 결이 다르다는 것을. 그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지 못하면, 나는 또다시 같은 방식으로 상처받고, 에너지를 잃고, 스스로를 잊게 된다.
그래서 나는 선택한다. 무엇에 반응할지, 누구에게 마음을 줄지. 모든 걸 닫고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열고 휘둘리지 않는 것도 아니라, 그저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
나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평온한 세계에 들어올 수 있는 문은 오직 '의도와 태도'를 통해서만 열리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저 착하고 싶었다. 나쁜 사람이란 오해도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진짜 품위는 모두에게 친절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떻게 반응할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반응의 기준은 오직 나 자신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감정에 머물고 싶은지, 어떤 에너지 속에서 숨 쉬고 싶은지를 온전히 감각하는 내가, 그 기준이다.
나는 이제 나를 휘두르지 않는다. 상황도, 사람도, 타인의 욕망도, 이제는 내 안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지부터 묻는다.
이건 내가 외로워지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더 깊고 따뜻한 관계를 맺고 싶기 때문이다. 허용이 아닌 선택으로 이루어진 관계, 경계 위에 선 신뢰, 가볍지 않은 연결.
그런 관계는 누구와도 맺을 수 없다. 그런 나의 고요함은 아무에게나 보여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없이 선택하고, 조용히 단절하며, 나의 반응을 아낀다.
그건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자, 나를 잃지 않기 위한 결심이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이 결심의 끝에는, 진짜로 닿고 싶은 사람과의 단단한 연결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https://medium.com/@irenekim1b/true-dignity-knowing-how-to-respond-and-to-whom-61f1e23245d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