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신 건, 사랑이 아니라 갈증이었다

by Irene
pexels-pixabay-247770.jpg

나는 그렇게 배웠다. 책에서 그렇게 읽었고, 세상도 그렇게 말해왔다.

겪어봐야 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실수하면서 배워야 진짜 내 것이 된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사람을 만나고, 상처받고, 기대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사람을 알아간다고 믿는다. 그게 인생이라 여겨지고, 그게 성장인 줄 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 문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물이 더러운지 깨끗한지는, 목이 마를 때 바로 알 수 있다.”

처음엔 그 문장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딘가 흐름이 이상했다.

정말 목이 마를 때 우리는 물이 맑은지 탁한지를 알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목이 마르면 우리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마신다.

물이 썩었는지, 흐린지, 불순물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 채 들이켜버린다.

갈증이 모든 감각을 무디게 하기 때문이다.


관계도 그렇다. 왜 우리는 그런 사람을 받아들일까? 왜 우리는 그런 말에 마음을 내어줄까? 왜 우리는 어떤 관계에 쉽게 빠져들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너무 목마르기 때문이다.

공허하고, 외롭고,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갈망이 우리를 움직인다.

그래서 에너지가 탁하든 말든,

그 사람의 눈빛이 불편하든 말든,

그저 그 안으로 들어간다.

물이니까 마셔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제는 안다.

물이 맑은지 더러운지는, 목이 마르지 않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외롭지 않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말투, 눈빛, 에너지의 결이 보인다.

마음이 고요할 때야 비로소 상대가 진심인지, 가면을 쓰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의 대화가 나를 확장시키는지 소모시키는지를 감지할 수 있다.


내면이 고요한 사람은, 아주 미세한 떨림도 느낀다.

말하지 않은 분위기, 눈빛의 망설임, 말의 맥락 뒤에 숨은 불일치.

그 모든 것을 단 1초 만에 읽는다.

그 감지력은 논리도 아니고 경험도 아니다.

그냥 존재의 레이더가 켜져 있는 것이다.

고요한 내면이 보내는 미세한 진동에 반응하는 감각이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겪어야 안다고, 상처를 받아야 성장한다고.

세상은 여전히 그렇게 말한다.

누구든 한 번쯤은 부딪혀봐야 한다고, 그래야 사람을 볼 줄 안다고.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더 이상 겪지 않아도 감지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시작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는 걸.

선택 이전에 이미 감각은 대답하고 있다는 걸.


이건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내면을 지키기로 선택한 결과다.

함부로 섞이지 않기로 했고,

혼자 있어도 괜찮은 마음을 만들었고,

관계 속에서 내 중심을 흐트리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나는 점점 더 정확해졌다.


그 이후로 나는 달라졌다.

말이 아무리 따뜻해도 그 에너지가 어딘가 뒤틀려 있다면 멈춘다.

겉으로는 친절해 보여도 마음이 불편하면 다가가지 않는다.

반대로, 말 없이도 결이 정갈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조용히 다가가보아도 된다는 신호다.


더 이상 “겪고 나서야 안다”는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내 안의 고요함이 충분한 때,

그 사람은 굳이 다가오지 않아도 이미 느껴진다.


관계는 나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부족할 때마다 꺼내 쓰는 도구도 아니다.

관계는 내가 이미 정렬되어 있을 때,

그 정렬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더 깊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내면이 정제될수록 관계는 더 맑아진다.

감지력은 더 선명해지고, 상처는 더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혹시 지금 누군가와의 관계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사람이 정말 문제이기 이전에

나는 지금 얼마나 목이 말랐던 것은 아닌가?


그 질문 하나가

나를 지켜주는 첫 번째 방어선이다.

그 질문이,

내 존재를 맑게 정제하는 시작이 된다.


https://medium.com/@irenekim1b/when-we-are-no-longer-thirsty-37105b9f5be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