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태도는 때때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화려한 가능성들 앞에서 쉽게 설레지 않고, 마음을 급히 열지도 않는다. 빠르게 친해지고, 가볍게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나는 조용히 물러나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건 너무 닫힌 태도라고, 세상과 어울리려면 어느 정도는 타협도 하고, 마음을 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거절하는 것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나를 흐리게 하는 방식이다. 내가 아끼는 것은 나의 외로움이 아니라, 그 외로움을 진심으로 품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인연이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맞다. 나는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어떤 충족이나 완성의 의미로서의 타인이 아니라,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깊은 울림이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그렇게 살다가 기회를 놓치면 어떡해요?”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기회는 오지 않아요. 인연이 오는 거죠.”
또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두렵지 않나요?” 그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할 것이다.
“두려운 날도 있어요. 하지만 방향을 잃은 적은 없어요.”
나는 이 삶이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정서가 메말라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잃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태도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을 믿는다. 하지만 사랑은 오히려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느낀다. 가볍게 주고받기엔 너무 무거운 것, 그렇기에 오래 생각하고, 천천히 내어야 하는 것.
나는 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대체 가능한 친밀감이 아니라, 서로를 분명히 알아보는 진짜 연결이다. 그래서 나를 비워두고, 나를 지키고, 때로는 외로움을 통과하는 것이다.
혼자인 밤, 불쑥 다가오는 쓸쓸함. 그럴 때마다 흔들린다. 지금이라도 누군가를 곁에 두면, 덜 힘들어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오래 가지 않는 위안이라는 걸 안다. 잠시 채워졌다고 느낀 그 자리엔 오히려 더 깊은 허무가 밀려오고, 결국 다시 나로 돌아와야 한다.
나는 선택한다. 아무 관계에나 나를 내어주지 않겠다고. 지금 비어 있는 이 자리, 그 비어 있음이야말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또 이렇게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꼭 그래야 하나요?”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로 살기 위해서요.”
그 말은 단순한 자기고집이 아니다. 삶을 통해 배우고 체득한 어떤 감각이다. 쉽게 마음을 주고받다 보면, 결국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잃게 되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걸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디더라도, 천천히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기다림은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건 방향을 가진 고요다. 움직이지 않음은 포기가 아니라, 확신에서 오는 평온이다.
나는 지금 이 삶의 속도와 무게가 내게 정확히 맞는다고 느낀다. 흘려보낼 수 있는 것들은 보내고, 다다를 수 있는 것을 위해 길을 비워두는 것. 그것이 내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다.
어쩌면 그 기다림 끝에 누군가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기다림을 선택하고 살아낸 시간 자체가 이미 나를 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연결을 믿고, 사람을 믿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진짜 연결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준비가 되었을 때 다가온다는 것을.
그렇기에 오늘도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흔들릴지언정, 흘러가지 않기로 다짐하며. 마침내 누군가가 이 고요를 이해하는 걸음으로 다가온다면, 그때 나는 내가 얼마나 지켜내고 있었는지를 말없이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 기다림은 끝이 아니라, 분명한 시작이라는 걸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 시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https://medium.com/@irenekim1b/the-quiet-strength-of-waiting-ecc78b60e80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