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무욕은 노력하지 않는다.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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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조용한 사람에게서 깊이를 느낀다. 말이 없고, 표정이 담담하며, 외부의 관심에 무반응한 태도 속에서 그 사람의 세계를 상상한다. 그러나 그 침묵이 모두 진짜인 것은 아니다. 어떤 침묵은 전략이고, 어떤 고요는 연기다. 어떤 무욕은 손에 넣기 위한 계산이고, 어떤 절제는 오히려 더 큰 인정욕의 그림자다.


겉으로는 닮아 보인다. 두 사람 모두 말이 없고, 욕망을 드러내지 않으며, 흐트러짐 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흐름이 다르다. 한 사람은 ‘움직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조이고 다듬는다. 다른 한 사람은 애초에 움직일 필요가 없다.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욕망이 의미를 잃은 곳에 있기 때문에.


진짜 무욕은 노력하지 않는다. 그는 ‘욕망 없음’을 연출하지 않는다. 그저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이미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심에 있기 때문에 굳이 반응할 필요가 없고, 이미 채워져 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흡수할 것이 없다.


어떤 이들은 반응하지 않기 위해 내면을 훈련하고, 말을 줄이기 위해 문장을 미리 계산하며, 침묵을 전략화하고, 고요를 배운다. 하지만 그 고요는 언제나 힘의 긴장으로 유지된다. 그의 눈빛은 가끔 흔들리고, 침묵은 차갑고, 고요함은 어딘가 어색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얻기 위해 버티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진짜는 전혀 다르다. 그는 자신을 연출하지 않는다. 어떤 역할도 하지 않고, 어떤 태도도 정하지 않는다. 그는 관찰되지 않으려 하지도 않고, 주목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존재’한다. 존재할 뿐인데, 그 존재에는 묵직한 리듬이 있다.


그 리듬은 시간과 무관하다. 사계절이 흘러도 똑같은 걸음, 똑같은 간격, 똑같은 고요. 그는 반복을 통해 자신을 정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제된 존재로서 반복을 견디는 사람이다. 어떤 욕망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욕망과 무관한 방향을 택하는 사람. 그는 무욕을 말하지 않는다. 무욕을 설명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의도’의 언어가 되기 때문이다.


진짜 무욕은 그렇게 말이 없다. 하지만 그의 리듬은 무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지나고,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다.


그를 볼 때 우리는 이상한 감각을 느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그에게는 완성된 문장이 있다. 그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데, 그의 리듬은 선율처럼 흐른다. 그는 침묵하고 있지만, 그 침묵은 고요가 아니라 구조다.


그는 우리를 설득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그 사람 앞에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진짜 무욕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증명한다.



https://medium.com/@irenekim1b/the-rhythm-of-true-dispassion-bc4fa9c8d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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