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나의 뿌리를 시험한다.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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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까지도. 돈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같은 것이다. 그래서 돈이 생겼을 때 나는 묻는다. 이 여유는 나를 위한 것일까, 남을 위한 것일까. 과시하기 위한 것일까. 이 흐름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일까, 불안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말로는 자신을 잘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의 흐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카드 사용 내역서 하나만 봐도 안다. 거기엔 나의 진짜 삶의 패턴이 담겨 있다. 어디에 가장 많이 쓰는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항목이 무엇인지, 충동적 소비인지, 계획된 투자인지. 그걸 보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지, 어떤 정서 속에 머물러 있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한번은 AI 기술이 나의 신용카드 부정사용을 잡아낸 사례를 본 적이 있다. 나의 평소 소비 패턴과 달라서 감지됐다고 했다. 그걸 보면서 이상하게도 생각이 많아졌다. 기술은 이미 돈의 흐름을 읽고, 패턴을 인식하고, ‘그 사람답지 않은 행동’을 구분해낸다.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 내 카드 내역을 보며 나 자신을 읽어낼 수 있을까. 내 소비는 지금의 나를 반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원하지도 않은 삶의 방향으로 나를 떠밀고 있는 걸까.


돈은 흘러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중요한 건, 그 흐름이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다. 과시로 흘러가는 돈은 잠깐의 불꽃일 뿐이다. 반짝이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하지만 진심에서 흘러나온 돈은 사람을 살리고, 자신을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진짜 부유함이란 얼마나 많이 벌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썼는가에 있다고 믿는다.


돈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람을 드러낼 뿐이다. 마치 조용히 빛을 비추는 거울처럼, 돈은 그 사람의 뿌리가 어디에 박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뿌리가 얕은 사람은 돈이 생기면 금방 교만해지고, 뿌리가 깊은 사람은 돈이 많아질수록 더 겸손해진다. 나는 이것이 돈이 가진 이중적인 힘이라고 생각한다. 축복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유혹이고 시험이다. 많은 이들이 가난할 때보다 돈을 가진 이후에 무너졌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지출을 바라보며 내 영혼의 결을 돌아본다. 나는 배려로 돈을 쓰고 있는가, 아니면 욕망으로 쓰고 있는가. 불안과 허기를 달래기 위해 돈을 쓰고 있는가, 아니면 내 안의 충만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어느 날 문득, 진짜로 내가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 건 수입이 늘었을 때가 아니었다. 돈을 쓰기 전에 한 번 더 멈추어서, ‘이건 어떤 마음으로 쓰는 돈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을 때였다. 나의 결이 단단해지고 있다는 신호는 거기에서 시작됐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늘어나는 건 물건의 개수가 아니라 시간의 쓰임이었다. 더 많은 물건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보다 더 큰 자유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줄여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돈이 많아질수록 내가 더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통제되지 않은 돈은 오히려 나를 지배했고, 내가 돈을 사용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돈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돈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돈 위에 서 있으려 한다. 내가 중심에 서 있고, 돈은 그 중심을 보조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기부나 봉사 같은 일은 분명 의미 있는 행위다. 나 역시 그런 일에 마음이 끌릴 때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돈이 많아졌으니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질 때는 조심스럽다. 강요된 선함은 때때로 위선이 되고, 의무감에서 흘러나온 행동은 누군가에게 부담이 된다. 진짜 기부는 내가 충분히 충만할 때,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여유가 가득 찼을 때 그 여유가 타인에게 흘러갈 수 있다면, 그건 나눔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억지로 쥐어짜낸 선의가 아니라, 고요하고 당연한 내 삶의 일부로서 그렇게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돈을 지출할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돈은 나를 더 크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시험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진실되게 답할 수 있어야만 내가 돈보다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돈은 수단이지만,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거울 같은 존재다. 그리고 나는 그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싶다.


돈은 여전히 나에게 힘이다. 동시에 책임이고, 철학이다. 나는 이제 돈을 감정 없이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매일 조금씩 써 내려가는 삶의 문장이고, 내가 가장 자주 쓰는 붓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쓰는 내 손끝에서, 내 마음의 색이 가장 선명하게 묻어난다. 나는 그 색이 너무 흐리지 않기를 바란다. 과하지도, 지나치게 인색하지도 않게. 단지 내 삶의 결을 닮은 흐름으로, 그렇게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https://medium.com/@irenekim1b/money-as-a-mirror-8f0fbf46e8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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