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숟가락은 없다.”
“아는 것과 길을 아는 것, 그리고 그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그 말을 곱씹으며 오늘의 나를 되돌아본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 그러나 그 앎이 언제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거의 매일, 아니 어쩌면 평생토록 그 간극 속을 살아간다.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하게 되고,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머뭇거리다 끝내 피한다. 그것이 인간의 아이러니이자 끊임없는 딜레마다.
나 역시 매일 아침, 내 몸을 점검하며 그 모순의 그림자를 확인한다.
어제 나는 알았다.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면 몸이 무거워지고, 다음 날이면 머리가 멍해지며 감정도 예민해진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이 너무 잘 되었기에 욕심을 부렸다. “이번 한 번쯤은 괜찮겠지.” 그 조용한 유혹은 아주 단단하게 나를 흔들었다. 결국 나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단백질을 섭취했다. 그 결과가 오늘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충분히 알면서도, 나는 그 길을 택했다.
그 순간을 어떻게 이름 지을 수 있을까? 유혹, 욕망, 무지, 혹은 단지 인간의 본성?
나는 늘 그 경계에 선다. ‘이번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라는 속삭임. 그러나 경험은 언제나 단호하게 말한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나 ‘이번 한 번’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고.
지금 ‘도(道)’를 수련하고 있다. 무심(無心), 무위(無爲), 무아(無我)를 실천하며 그 길을 걷고자 한다. 오늘 아침에도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건 단지 감정일 뿐이야. 괜찮아, 견뎌보자.”
하지만 몸은 이미 그 말을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 사소한 변화에도 흔들리는 나.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무심으로 이것을 ‘느끼자’. 그리고 기록하자.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문득 깨닫는다. 도를 닦는 데 있어 진짜 중요한 것은 어쩌면 내면의 태도보다 환경 설정일지도 모른다고. 내면은 외면을 이겨내지 못할 때가 있고, 오히려 외부 조건이 안정되어야 비로소 내면의 깊이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이번 주 내내 식단과 루틴을 잘 지켰을 때는 모든 수련이 자연스레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오늘, 내 몸은 무겁고 흐릿하다. 그러자 모든 감각과 의지가 흔들린다. 어제의 메모가 떠오른다. “숟가락은 없다. 단지 의식이 그 숟가락을 만들어낼 뿐이다.” 영화는 내면의 힘을 말한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내면을 지탱할 힘조차 주지 않는 외면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의식할 수 있을까?
오늘 나는 몸으로 배운다. 동기부여, 명상, 내면의 울림조차도 ‘컨디션’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 있음을. 그리고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인정한다.
삶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만 흐르지 않으며, 계획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다. 신은 때때로 나를 시험한다. 평온한 시간이 아닌, 혼란과 고요가 뒤섞인 그 경계에서 조용히 묻는다.
“지금도, 도를 걷고 있는가?”
진짜 실력은 평안할 때가 아니라, 비바람이 몰아치고 혼란이 엄습할 때 드러난다. 그 안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로 평온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힘들지만, 오늘을 잘 지내보자.”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지금, 나는 아프지 않고 살아 있으며, 내 하루를 내 방식대로 살아갈 자유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https://medium.com/@irenekim1b/the-aesthetics-of-contradiction-and-still-i-walk-f2e40c0f6c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