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은 때로 피고인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by 김혜영 변호사

사람들은 변호사가 피고인의 편에서 그가 원하는 말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천 명의 피고인을 변호하며 내가 느낀 변론의 본질은 조금 달랐다.

때로 변론은 피고인을 설득하여 ‘진실의 편’에 서게 만드는 치열한 과정이었다.


변호인은 기록과 증거를 검토한 후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피고인의 주장이 타당하면 ‘무죄’의 길로,

수사기관이 제출한 증거가 명백하여 피해자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면 ‘인정’의 길로 피고인을 안내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무리하게 공소사실을 부인하다가는 ‘반성 없는 태도’로 간주되어 형량만 무거워질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피고인을 지키기 위한 변호인의 마지막 전략이다.


하지만 설득은 늘 쉽지 않다.

특히 술이나 고령, 정신적 요인으로 당시의 기억이 왜곡된 피고인들은 자신의 ‘잘못된 기억’을 ‘진실’이라 굳게 믿는다.


한 번은 광화문 집회에서 경찰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70대 의사 분을 변호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셨고, 고집 또한 대단하셨다.


경찰은, "누군가 물을 뿌리며 도망가길래 잡으려고 했는데, 피고인이 방해했다"라고 주장했지만,

피고인은 단호했다.


"누가 물을 뿌렸느냐!
내가 현장에 있었는데 물을 맞은 적이 없다.
경찰이 거짓말을 한다!"

증거 기록 속 CCTV 영상에는 흐릿하게나마 물을 뿌리는 듯한 장면이 보였지만, 그는 자신의 기억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인 경찰이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만 번 이상의 증인신문을 진행하며 내가 얻은 안타까운 결론 중 하나는, 대개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인 경우가 많다. “는 것이다.

법정에서 다시 확인한 CCTV 영상과 증인의 구체적인 증언은 피고인의 기억이 오답이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재판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피고인을 법정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복도에서 나는 그를 붙잡고 마지막으로 설득했다.

“선생님, 이제는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선생님을 돕는 유일한 길입니다.”

자신의 기억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은 한 인간에게 죽기보다 싫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증언과 영상을 목격한 후에야 그는 비로소 고집을 내려놓으셨다.

피고인을 설득하는 그 짧은 순간, 나는 변호사로서의 가장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변호사는 피고인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뻔히 보이는 낭떠러지로 피고인이 걸어가게 둘 수도 없다.


설득은 때로 변론보다 어렵고 외로운 작업이지만,

그것이야말로 피고인을 진정으로 ‘보호’하는 길임을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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