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검사입니까

신뢰라는 이름의 마중물

by 김혜영 변호사

국선전담변호사 초년병 시절, 접견실에서 나를 가장 당혹스럽게 했던 외침은 이것이었다.

“변호사가 검사입니까!
왜 나한테만 잘못했다고 합니까!”


나는 당황했다.

피고인을 변호하기 위해서 나는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할 것인지 부인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기에,

피고인에게 피고인의 행위가 처벌받는 행위임을 설명해 주고 피고인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피고인들에게 나는 그저 경찰, 검사 다음으로 만난 '또 한 명의 심판자'일 뿐이었다.


그들은 억울했다.

그들의 억울함은 대부분 법적으로 무죄를 입증할 사유는 아니었지만,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는 간절한 갈망이었다.


수사기관은 행위의 '결과'만 물었고,

나는 행위의 '성립'만 물었다.

그 어디에도 '그 사람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깨달았다.

마음의 빗장을 열지 않은 피고인에게 증거기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때부터 나는 접견의 순서를 바꾸었다.

공소사실을 묻기 전에 그들의 억울함을 먼저 들었다.

법적으로 의미가 있든 없든, 그가 쏟아내는 감정의 응어리들을 의견서에 정성껏 담아냈다.

"당신의 마음을 내가 읽었습니다"라는 신호를 먼저 보냈다.


신기하게도, 억울함을 털어놓고 변호인을 신뢰하게 된 피고인들은

그제야 차가운 증거기록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막무가내로 부인하던 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반성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그들에게 범죄의 성립을 묻기 전에 그들의 억울함을 먼저 들어준 후부터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접견실에서 "변호사가 검사냐"는 비난이 사라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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