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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정원 Aug 22. 2023

이별을 위한 준비

    노래 가사 말처럼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일까. 지금까지 운명도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 믿었기에 약간 헷갈리는 대목이다. 어찌 됐건 만남을 즐겁고 행복하다. 그러나 모든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하기에 영원한 만남은 없다. 이제 이별과 친해질 법한데 아직도 낯설다.     



  숨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잘못을 저지르고 눈에 뜨일까 걱정되는 사람들처럼 오빠와 조카는 약속이라도 한 듯 병원 넓고 텅 빈 식당의 한구석을 찾았다. 각기 다른 네 사람이지만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음식이 나와도 잘못한 사람처럼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을 지키며 밥만 먹었다. 인절미가 목에 걸린 것 같은 답답함에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눌러본다.

  밥을 먹는 것인지 밥이 나를 먹은 것인지 아무 생각이 없다. 식사 후 말없이 병원 이층으로 올라갔다. 발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가슴이 콩닥콩닥거리며 올케언니가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눈물은 흘리지 말고 의연하자고 다짐을 했다. 항암치료로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이 겨우 다시 자란 짧은 머리에 보기 좋게 살이 찐 것 같은 부은 얼굴로 드디어 올케언니가 나타났다. 산소통을 매달고 휠체어에 힘겹게 앉은 모습의 올케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거의 동시에 조금전 다짐과는 달리 울어버리고 말았다.

  유방암 판정받은 지 일 년도 안 된, 이제 겨우 열 달이다. 약한 몸에 고된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도 포기하지 않고 고맙게도 잘 견뎌주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더 이상 치료가 필요 없고 가망이 없으니 호스피스과로 전과를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길어야 석 달에서 육 개월이라는 소리에 얼마나 놀랐을까 싶은데 도리어 울지 말라며 퉁퉁 부은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여 준다.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준 큰오빠지만 엄마가 늦게까지 살아계셨기에 지금까지 엄마를 대신해준 올케언니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처럼 나를 토닥여 주고 있다. 좋은 음식 찾지 말고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많이 먹고 보약도 먹으라면서···. 신앙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할 수도 있는 한평생의 삶에 대한 마음 정리를 짧은 반나절 사이에 끝내고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느님이 딱해서 고통의 시간을 줄여 주신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연신 자신보다는 혼자 남아 있을 오빠 걱정만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기죽어 어깨가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깔끔하고 씩씩하게 살 수 있도록 부탁한다는 말에 인정머리 없이, 언니 남편은 언니가 책임지라는 말을 툭, 뱉어버렸다. 하루라도 더 살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겠지만 멈칫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보름 전 응급실에 왔을 때 이미 자신의 상태를 직감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태가 더 좋아진 것도 아닌데 전과는 달리 퇴원하면서 앞으로는 음식 만드는 재미를 느끼며 조금씩 만들어 먹겠으니 반찬을 만들어 주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손수 만든 음식을 남편에게 먹여 주고 싶었나 보다. 생전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지나치게 독립적이고 이성적이어서 차갑게만 느껴지던 올케언니다. 그런 올케언니가 오빠를 부탁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지금까지 아버지처럼 든든했던 오빠의 모습이 왠지 작고 처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떠나는 올케언니에 대한 슬픔만큼이나 혼자 남겨져야 하는 오빠에 대한 걱정이 크다. 어쩌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큰 오빠에 대한 걱정이 더 크게 다가와 슬픈지도 모르겠다. 문득 지난주, 느닷없이 “나보다는 오빠가 더 걱정돼서 잘해 주는 것 알아”라고 하던 전화 속 힘없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때에도 나는 쌀쌀맞게 부정하지 않았다. 괜히 그랬다. 후회가 된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먼 길을 떠나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고통 없는 이별도 좋지만 삶을 정리하고 몇십 년을 함께 한 인연과 마지막 인사와 이별할 시간도 필요하다. 조용하고 품위 있게 가고 싶다는 올케 언니. 좋은 모습으로 남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모두에게 고마웠다는 인사를 남기며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안 좋았던 기억은 모두 잊고 홀로 가는 긴 여정을 좋았던 추억 하나하나 친구 삼아 외롭지 않고 따뜻하게 가면 좋겠다.

  올케언니 인생의 장편 마지막 부분은 고통 없이 평화롭고 우아하게 장식되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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