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에 얼려 죽음 문턱까지 갔었던 군자란이 기특하게 꽃을 피웠다. 양쪽 잎에 기대어 내민 꽃대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앙상하게 핀 꽃이 대견하고 기특하다. 그럼에도 죽어 잘라낸 밑둥이가 계속 눈에 거슬린다.
몇 년 동안 무사히 넘어갔던 환절기 앓이가 시작됐다. 그동안 마스크 덕분에 무사히 넘어가던 감기에 자신감이 생겨서 방심했던 것 같다. 약이 독하다는 의사의 처방에 몸만 늘어지고 열흘 가까이 기침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남들은 따뜻하다 못해 더워진 날씨에 반팔을 입고 놀러 다니는데 나는 기침 때문에 차량 맞게 겨울에도 잘 입지 않던 내복까지 꺼내 입었다. 기침이 더 심해질까 봐 나가지는 못하고 부러운 눈으로 맑은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앙상하게 잎이 잘려나간 베란다 군자란에 눈길이 간다. 애처롭게 바라보는 군자란에 미안한 마음을 담아 생기를 불어주고 나도 기분 전환을 해야겠다.
잘 키우려고 분갈이를 해 주면 화초가 도리어 몸살을 앓으며 잎이 누렇게 뜬다. 그래서 봄이 되면 해 주어야 할지 말지 망설이곤 했다. 쌍떡잎처럼 달랑 두 개밖에 없는 잎이 더 떨어질 것도 없는데 분갈이를 해 주어야겠다. 주인의 무심함을 보여주는 얼어서 죽어 잘라낸 누런 잎을 없애야겠다. 보기 싫은 흔적을 없애서 은근히 불편해진 마음을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 개선을 해야겠다.
불어오는 바람에 기침이 더 심해질까 걱정되어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바닥에 신문지를 넓게 펴 깔고 화분을 엎었다. 분명히 흙이 많았던 화분인데 흙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는 것도 아니고 굵고 하얀 뿌리가 실타래처럼 엉겨있는 것이 신기하고 징그럽기도 하다. 화분에 맞게 뿌리를 뜯어내어 정리를 해 주기로 했다. 뿌리와 뿌리가 서로 얽히고설켜서 손으로 아무리 떼어 내려고 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똑같은 두 개의 화분 속 군자란 뿌리는 완전 다른 느낌이다. 하나는 서로 얽혀있는 뿌리를 떼어 낼 수 없어서 한참 씨름을 하다 결국은 전지가위로 잘라내며 정리를 했다. 다른 화분의 뿌리는 손쉽게 뜯어져 분갈이가 빠르게 끝이 났다.
문득, 식물도 사람 관계와 똑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가족, 부모, 형제자매라고 다 끈끈한 것도 아니고, 지인이라도 다 똑같지 않다. 떼어 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떼어 낼 수 없이 얽힌 끈끈한 관계가 있고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끊어지는 사이가 있다. 특별하게 엉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잊히거나, 어느 순간 이유도 모른 채 떨어져 나간 사람도 꽤 있다. 거미줄 같이 얽긴 군자란 뿌리처럼 떼어지지 않는 사람이 나에게 몇 명이나 될까? 그래도 열 명은 되지 않으려나 후한 점수를 주며 하나, 둘, 손가락을 꼽아 본다. 세 명만 있어도 인생 성공이라는데 반타작한 다섯 명에 절반이라도 3명.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누구에게 성공한 인생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