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일까?
어렸을 때부터 인상에 관해 무심하지만 상처가 되는 말들을 들어왔다.
초등학생 때 나를 처음 본 친구의 친구는 날 보고 무서웠다고 했고,
중학교 야자시간에는 분명 열심히 공부 중이었는데, 내가 조는 줄 착각한 선생님의 회초리에 머리를 맞았다.
그 뒤로도 내 표정은 종종 오해를 불러왔다.
누군가는 나를 차갑다고 했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얼마 전, 회사에서는 날 알지도 못하는 제삼자가
"나의 눈에 안광이 없어 보인다. 무기력해 보인다"라고 한 말을 전해 들었다.
눈이 문제였을까? 아님 눈빛이 문제였을까?
남자친구는 내 눈이 제일 예쁘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다른 눈빛이 있는 걸까?
직장상사의 무심한 한마디는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콤플렉스를 다시 꺼내 놓았다.
그리고, 그날 충동적으로 성형외과 상담을 예약하고 인생 첫 성형상담을 받았다.
‘그래 이 참에 하자, 어차피 늘 하고 싶었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었지만,
열심히 내 눈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의사와의 짧은 상담을 마치고,
나에게 남은 건 찝찝한 기분이었다.
쌍꺼풀이 없고 눈이 쳐진 탓에 항상 콤플렉스가 있었고 성형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이렇게 남들의 말에 휘둘려서 결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고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
결국 내 태도겠지.
너무 투명하게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들,
그래서 사람들에게 쉽게 들켜버리고 마는 나의 표정.
긴장, 불안, 걱정같이 부정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내 표정은
날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는 그저 안 좋게 보일 뿐이다.
사실, 나도 누군가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성에 대해 짐작한 적이 많다.
그러니, 억울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았다.
때로는 ‘척’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건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내가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 사실이 괜한 오해로 가려지게 하고 싶지는 않다.
문득 소설 <모순>의 한 문장이 생각났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나는 내 인생을 최대한 넓게 해석하고 싶다.
당장은 나에게 닥친 일이 불행처럼 느껴질지라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불행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