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라는 이름의 무게
나는 K-장녀 못지않게 효도에 대한 일종의 강박이 있는 'K-둘째'다.
우리 집은 배달이나 외식을 할 때면 습관처럼 언니나 내가 결제를 하곤 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가 강요하거나 부탁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부모님이 딱히 거절하지 않고 기뻐하시니, 좋아하는 걸 사드릴 때마다 나도 뿌듯했다.
든든한 동반자였던 언니가 결혼을 해서 집을 나가기 전까지는,
독박효도.
지금 내가 느끼는 무게다.
감사한 마음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넉넉하지 않은 월급으로 집에 보태는 월세부터, 종종 시키는 배달과 외식비까지
가계부를 쓰다 보면 웬만한 자취생보다 지출이 더 많다
돈뿐만이 아니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밖에서 좋은 걸 먹고, 괜찮은 곳에 갈 때면, 집에 있는 부모님이 생각나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런 고민은 나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송길영 <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 ‘효도의 종말’ 챕터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건전한 부모 자식 관계는 무리한 요구는 거절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무엇보다 거절당한 후 상처받지 않는 ‘상호 신뢰’와 ‘막역함’ 또한 이러한 관계의 선행조건입니다.”
그는 20년 양육의 대가로 60년의 돌봄을 요구받는 시대에, ‘효도’는 불공정한 거래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딸들이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갖는 ‘죄책감’ 대신, 각자가 자립의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과 협력의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잘 살아내는 것이다.
부모를 의무와 책임감의 대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효도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만큼이면 충분하다.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부모님이 떠올라 괜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면,
그 마음 대신, 다음에 부모님에게 소개해줄 좋은 곳을 알아냈다는 '뿌듯함'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
나도 앞으로, 진심으로 오래 할 수 있는 효도의 방식을 고민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