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넷, 제 취미는 다꾸입니다.

마흔넷, 이제 나를 꿈꾸기 시작했다.

by 한사랑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여름날. 오늘도 폭풍같이 집안일을 마치고 한숨을 돌릴 무렵, 얼음 동동 띄운 커피 한 잔과 함께 창가가 보이는 식탁에 앉아본다. 거실 창으로 파랗고 더운 하늘과 이제 가을을 기다리고 있는 산이 보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반복적이지만 해야만 하는 주부의 일상을 채우고 난 후 찾아오는 나만의 시간.

커피 한 모금을 머금고, 일기장을 꺼내어 생각을 끄적여본다. 글이라기보다는 그냥 생각을 적어보기 시작한 지 한 달여.. 거기에 덧붙여 나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일기장을 예쁘게 꾸며보기. 그리고 하루를 간단히 기록해보기. 맞다. 내 취미는 다꾸다.


다꾸란 '다이어리 꾸미기'의 줄임말이다.

'다꾸? 스티커 붙이고, 일기 쓰고 하는 그거? 그거 애들이나 하는 거 아니야? '

다꾸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내가 다꾸를 처음 접해본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용돈 모아 큰맘 먹고 6공 다이어리를 사서는 온갖 스티커와 색깔 펜으로 정성껏 꾸미고 거기에 월계획도 적고, 하루의 기록이나 스터디 플랜도 적어놓는 그야말로 정성스러운 작업이었다. 다 꾸며놓고 보면서 얼마나 뿌듯해했는지.. 문제는 길어야 작심 한 달짜리 취미였다는 것. 늘 첫 번째 챕터에만 까맣게 손때가 탔던 '수학의 정석' 책 옆면처럼 앞부분만 열심히 적어 놓고는 학업에 밀려, 그리고 흥미가 떨어져 잊히고 말았던 비운의 취미생활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매년 연초가 되면 다시 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던 불굴의 오뚝이 같은 취미생활. 다꾸.


아무튼 내 기억 속의 다꾸는 그렇게 어린 친구들의 전유물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러던 내가 어느덧 40대. 그리고 요즘 다시 다꾸에 빠져있다. 하지만 이번엔 작 심한 달이 아닌, 6개월째 나의 즐거운 여가생활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정도면 남들한테 내 취미에 대해, 그 꾸준함에 대해 자랑스레 얘기할 법도 한데, 그게 그렇게 자랑스럽게 얘기할 꺼리는 되지는 못했다.

너무 재미있고 그 시간이 행복하면서도 '그 나이에 애들같이 무슨 다꾸야?', '철 좀 들어라.' 하는 소리를 들을까 봐, 다른 사람들이 '취미가 뭐예요?' 하고 물으면 '다꾸!'라고 말하는 대신 그냥 다른 취미를 얘기하곤 했었다. 책 읽기나 드라마 몰아보기나 뭐 그런..(물론 이것도 내 다른 진짜 취미이긴 하다.) 혹시 나잇값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될까 봐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SNS를 살펴보다가, 좀 다른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5-6년 전엔 나도 내 사생활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공감도 얻고 자랑도 하고 싶어서 SNS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시선들이 신물 나고 부담되기 시작했다. 결국 SNS를 모두 접고 살기 시작했다. SNS를 안 하니 뭔가 생활이 여유롭기도 하고 개운하기도 했지만 시대의 트렌드에서는 조금 멀어졌달까? 그래도 만족하며 잘 살았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 하나. 그리고 뜬금없이 인스타를 개설해보았다. 그리고 가입하는 순간..

내가 정말 세상 사람들하고 많이 떨어져 지냈구나 하는 현실을 실감했다.


SNS 속에는 정말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 재능을 SNS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유롭게 표현해낸다. 사생활 기록이 아닌 재능 기록은 그걸 구경하며 감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그 재능 기록 중에는 나처럼 다꾸를 좋아해서 SNS에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혹시나 해서 SNS에 가입을 했는데 이렇게나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니.. 하루 종일 구경을 해도 해도 끝이 없을 정도였고, 저마다 다른 개성 있는 다꾸가 내 앞에 펼쳐졌다. 그러다 어느새 중독된 것처럼 몇 시간째 SNS를 탐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SNS 속 다꾸러들도 대부분은 10대, 20대가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중에는 나처럼 육퇴 후 힐링으로 다꾸하며 일기를 쓰는 다꾸러(다꾸하는 사람들)들도 있고, 흔치 않을 것 같았던 남성 다꾸러들도 가끔씩 보인다. 다꾸 용품 디자이너나 문구 사장들 중에도 남성들이 종종 있는 것만 보더라도, 다꾸에 대한 관심이 성별에 따라 국한되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다시 한번 느끼지만 시대가 참 행복하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넣었다.

'좋아하는 색이나 취미, 직업에 성별이나 나이를 개입해 말하는 건 이미 구시대적 발상이다.’ 이제는 보편화된 생각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내가 그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용기를 내어, 나도 다꾸러로써 SNS에 1일 1다꾸 챌린지를 목표로 매일 하나씩 게시물을 올려보기로 했다. 못난 창작물을 전시하는 것처럼 창피하고 화끈거렸지만,

'내가 올린 게시물을 누가 보겠어. 나는 아는 사람도 없는걸? 나라는 건 아무도 모를 거야.'

하는 익명성에 용기를 얻어, 하지만 그래서 더 부담 없이 일기 쓰듯 하루 하나씩 다꾸 사진을 게시해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비슷한 상황의 다른 다꾸러분께 메시지(DM)를 받기도 하고, 일기의 내용을 보면서 공감한다는 댓글도 종종 달리기 시작했다. ‘좋아요’에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하루하루 ‘좋아요’가 늘어가는 걸 보며, 그리고 팔로워가 생기는 걸 보며 이 세계의 신기함에 다시 한번 놀라는 중이다.


요즘은 다꾸를 직접 하는 것도 즐기면서 다른 다꾸러들의 다꾸도 관심 있게 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다꾸를 보면서 배우기도 하고 그 다양성에 감탄도 해본다. 그렇게 우연히 보다가 다양한 연령의 다꾸러를 직접 발견하기도 한다. 우연히 본 일기 내용에(물론 남의 일기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고, 다꾸 디자인을 참고하려고 보다 보면 일기 내용이 같이 눈에 띌 때가 있다.) 육아라던지, 회사생활이라던지 하는 내용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앗! 나와 비슷한 상황인걸? 하며 직접 만난 것도 아닌데 반가움이 배가되곤 한다. 세상이 참 반갑게도 변해있었다. 이렇게나 반갑게 변해있는 것도 모르고 이제껏 우물 안 개구리로 살며 나를 부끄러워하고 감추려 했구나.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일기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아닌가. 거기다 일기를 쓴다고 하면 참 좋은 습관을 가졌네~ 하고 얘기해주기까지 한다.

생각해보면 다꾸는 일기를 쓰는 공간을 내 개성껏 꾸며서 거기에 일기를 쓰는 일인데, 난 왜 아이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며 숨기는 데 급급했던 걸까. 이 좋은 취미에 남녀노소라는 잣대를 드리대는 것 자체가 사실 오류를 품고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제까지의 나. 부끄럽다. 세상에 이런 편견 투성이 일들이 한두 개이겠냐마는 오늘은 그중 하나의 편견을 깬 기념일이다.

그리고 나 대한민국 아줌마 이제 당당히 이야기한다. 제 취미요? 제 취미는 '다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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