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알바 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옙히 Jun 07. 2021

[알바;썰] 샐러드 타이쿤

비건의 세계에 빠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이후 대학생활 내내 해왔던 아르바이트에 지쳐버렸다. 아마도 통장이 충분히 부풀어 올랐기 때문에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졸업반을 온라인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에 심통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2020년 여름 2달을 아무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보냈다. 여행도 가보고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코로나가 터져서 사람을 아무도 만나지 않았었는데, 조심스럽게 밖을 나서게 시기였다. 돈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만 쓰는 것은 너무나 쉽다. 통장은 금세 작아졌다.


다시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이쯤 해서 집 앞의 지하철 노선이 연장 개통했다. 한 번도 서울을 벗어나 생활을 하거나 일을 할 생각을 못했는데, 가까운 곳에 경기도 핫플레이스가 있다 보니 동네에서 조금 시선을 돌렸다. 마침 평소 일 해보고 싶었던 업종인 샐러드 가게가 오픈했고, 오픈 멤버로 일을 하게 되었다. 프랜차이즈 가게는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포케라는 메뉴를 파는 가게였다. 샐러드 위에 밥을 올린 형태로, 여러 가지 토핑을 추가해 먹는 음식이었다. 가격대는 좀 있었다. 1.8 국밥 정도. 프랜차이즈 샐러드 가게보다 1.5배 정도 비쌌지만, 퀄리티는 훨씬 좋아서 나름 동네에서 쉽게 자리를 잡게 되는 가게였다. 첫 시작을 함께해서 가게에 도움을 주는 느낌을 받았다. 샐러드 가게에서 일했던 경험을 담아보겠다.


▲ 당시 만들었던 포케. 식사 대신 먹기도 했다.


1. 샐러드 가게는 재료 준비가 생명이다.

아침 9시에 가게에 도착해 10시 오픈을 위해 재료를 준비한다. 밀려드는 점심 손님에 대비하기 위해 많은 양의 재료를 손질하지만 주문과 손님은 꾸준히 들어오기도 해서 사실상 하루 종일 재료 준비를 하다가 끝난다. 어느 정도 채웠다고 느끼면 분명 다른 재료를 채울 차례가 된다. 프랜차이즈 가게는 이미 세척한 채소를 낱개로 포장해 재료 손질이 매우 편한 것으로 아는데, 이 가게는 음식의 질을 굉장히 따져서 모든 재료를 처음부터 직접 준비해야 했다. 나중에야 익숙해져서 금방 했지만, 내가 일했던 반년 동안 가르쳤더니 다음날 잠적해버린 아르바이트가 6명이었다. 부지런하거나 끈기가 없으면 샐러드를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도 벅차다.


2. 파트너와의 협업이 중요하다.

재료 준비가 이렇다 보니, 샐러드 가게는 반드시 여러 명이 일을 하고 있다. 이 가게는 2인 1조로 일했는데, 나와 함께 일을 했던 파트너와 일적으로 너무 잘 맞았다. 둘 다 일을 미뤄두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차라리 미리미리 해두고 나중에 쉬자는 주의였는데, 이 점이 잘 맞아서 빠릿빠릿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꼭 샐러드 가게가 아니더라도 아르바이트 시장에서 이렇게 합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사장님이나 가게 사정이 별로여도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3. 시대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채식과 배달이라는 2020년 시대의 큰 흐름을 직접 겪었다. 가게는 신도시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는데, 매장에 오는 손님들은 모두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운동복을 입고 있거나 집 앞에 나온 듯한 편한 복장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경우 프랜차이즈 분식집이나 국밥 등을 먹었을 텐데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반 음식점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도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또한, 배달이 정말 많았다. 하루 매출의 절반 이상이 배달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집에 있으면서 기름진 음식만을 먹기에는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업종이라도 분명 위생이 중요하지만, 샐러드 가게만큼 위생을 강조하는 곳은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이 신선한 채소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샐러드 가게는 그것을 분명 실추시키면 안 되었다. 그래서 복장이나 매장 청소를 굉장히 엄격히 따졌는데, 약간 결벽증이 있는 나와 잘 맞았다. 만약 평소 꼼꼼하지 못하거나 개인위생을 잘 지키지 못하는 편이라고 생각된다면, 샐러드 가게가 스스로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샐러드 가게

장점 :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에게 얻는 에너지, 시대의 흐름, 좋은 파트너십

단점 : 상상 초월의 업무량, 철저한 위생에 대한 압박

급여 : 9,500원 > 9,000원 (일하는 도중 급여가 사장님에 의해 강제로 변경되었다. 이 점이 그만두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바;썰] 고독을 즐기는 편의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