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름다움을 정의하기 위해서
학창 시절부터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다. 까무잡잡한 피부. 쭉 찢어진 눈. 비버처럼 튀어나온 앞니. 굵은 종아리와 허벅지. 작은 키와 넓은 어깨. 그에 맞춰 흑인, 깜둥이, 비버, 코끼리 다리, 땅딸보 등 다양하게 놀림 받았다. 애정 없는 별칭들과 외모 폭탄이 되어 남자애들에게 받는 조롱들까지. 이제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정말 못생긴 줄 알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이목구비는 자유로울 뿐이며 나름대로 예쁘게 봐주면 귀여운 구석도 있다며 내가 나를 지켜냈다는 것이다. 독기와 자존심이 날아오는 조롱과 상처들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도록 가만두지 않았지만, 언제나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에 대한 의식과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은 마음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으로 발이 두 갈래로 쪼개질 것만 같은 구두와 원피스에 코트 한 장 걸쳤다. 젊음으로 추위와 고통을 이겨냈지만, 서른을 앞둔 지금은 그럴만한 체력이 없다. 그래서일까. 내가 만들어 놓은 미적 기준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고, 몸의 고통을 덜어내는 선택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논문에 기반한 것도 아니고, 책을 인용하지도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과 생각으로 글이 채워질 예정이니 그 점을 잘 알아줬으면 좋겠다. 한 인간이 어떻게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토록 쫓던 아름다움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과 앞으로는 어떤 아름다움을 지니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나눠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