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3. 이스탄불 3일차 - 시내관광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PCR 검사 결과가 필요하기 때문에 근처 PCR 검사소를 검색해서 찾아갔다. 그런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있다. 몇몇 검사소를 찾아서 메시지를 보내보니 열린 곳이 하나 있어서 걸어갔다. 어제 사람으로 가득하던 그랜드 바자 근처를 걷는데도 열린 상점도 사람도 거의 없다. PCR 검사소에서 검사를 받는데 기대했던 코가 아닌 목을 몇 번 훑어서 샘플을 채취한다. 검사료도 100리라 밖에 받지 않는데, 이건 건물 입구에 쓰여있는 가격보다 저렴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혹시 비행기 탈 때 문제는 되지 않을까 J 씨는 걱정을 했지만 다들 이렇게 하는 데다가, 우리는 공항에 좀 일찍 갈 예정이라 정말 급하면 신속 항원 테스트를 공항에서 하면 된다고 하며 안심시켰다.
첫 번째 목적지는 고고학 박물관이었다. 고대 그리스 유적을 보고 싶다면 터키로 가라고 하더니 역시나 유물의 양이 방대하다. 기원전 히타히트 시절의 유물부터 시작해서 오리엔트 문명, 고대 그리스 로마를 넘어 이슬람 제국 시대 유물까지 방대한 양이 모여있었다. 그중 메인 홀에 해당하는 고고학 박물관의 중심이 되는 유물은 그래도 고대 그리스, 로마 유물이었는데, 무식한 관계로 간단히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한두 시간 정도는 순식간에 지나고 내가 무엇을 보는지 어디에 있는지 감각이 까마득해질 정도로 유물이 많이 있었다. 중간에 야외 카페에서 쉬기도 하면서 열심히 구경을 했지만 모두 보는 것은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고학 박물관을 나서자 아야 이레네가 보인다. 겉 보기에는 아야 소피아의 축소판 같이 생겨서 들어가기로 하고 가는데 사람이 별로 없다. 왜 인기가 없는 것인지 의아해하면서 들어가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자체로는 웅장한 규모의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천지차이다. 장식 요소나 보존 상태가 너무 큰 차이가 났다. 그래도 사람도 별로 없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세월이 녹아있는 건물을 둘러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이곳은 이슬람이 점령한 후에는 모스크나 교회로 사용되지 않고 무기고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굴욕을 주는 목적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야 소피아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상징성으로 사람들이 압도당하는 바람에 다른 길을 걸었던 것 같지만 말이다.
아야 소피아를 나서자 톱카프 궁전이 보였다. 어제의 자연스럽고 완벽했던 흐름을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톱카프 궁전으로 향했다. 사실 이 시점에서 나는 두 가지 큰 실수를 한 셈이었는데, 12시에 가까운 시간인데 톱카프를 보고 점심을 먹겠다는 결정을 한 것, 줄을 서기 귀찮다는 이유로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지 않은 점이었다. 아마 톱카프 궁전의 볼거리와 규모를 알았더라면 점심을 먹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서 느긋하게 구경했을 것 같다. 어제에 이어서 무식한 발이 이끄는 대로 정처 없이 궁전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궁전은 잘 꾸며진 정원에서부터 이미 심상치 않은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궁전 한편에 부엌이었던 곳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당시에 사용하던 다양한 주방 도구와 요리 문화를 볼 수 있었는데, 화려한 다과 용기부터 주방용기를 모두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금성에 있는 유물들이 떠올랐다. 아마 비슷한 시기까지 절대 왕정을 유지하면서 수집해놓은 물건들이다 보니 통하는 것이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양쪽 모두 유럽산 도자기와 청나라산 도자기도 있고 터키산 유리가 있었다.
주방 구경이 끝나갈 때쯤 초등학생의 습격을 받았다. 소풍이라도 온듯한 2-30명의 아이들이었는데 한 명이 폰카를 내밀길래 ‘그 새 익숙해진 대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몰려온다. 그리고 정신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인솔 교사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분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면서 쉼 없이 손짓한다. 손짓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2-30장은 찍힌 것 같다. 경비 아저씨도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해준다.
독서실 등의 몇몇 공간들을 구경하면서 궁전 중앙 즈음에 도달했을 무렵 긴 줄을 목격했다. 사람 수가 사람 수인만큼 중요한 포인트 같아서 일단 줄을 서본다. 1시간 가까이 줄을 서 있자 우리가 어디로 들어가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정무를 보던 중앙 홀 정도 되나 싶었는데 이슬람교의 제일 중요한 성유물이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이곳도 역시 몸을 가리는 옷과 여자는 머리카락을 가리는 숄이 필수다. 처음 우리를 반겨준 성유물은 지금 메카에 있는 검은 돌을 담았던 금속 케이스였고 이어서는 마호메드가 처음 거병할 때 썼다는 깃발이 있다. 그 직후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있는데 마호메드의 발자국, 수염 등이 있다. 안내하는 사람이 멈추지 말고 계속 이동해달라고 하는데도 요지부동이다. 대부분의 지연이 이 구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아마 나도 무슬림이라면 한참 보고 싶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어서 처음 마호메드의 부하가 되었던 4명의 칼리프와 마호메드 자신의 검이 모두 보관되어 있다. 화려한 검들이 처음 들었던 검인지는 몰라도 죽을 때 차던 검이긴 했을 것 같다. 이어서 코란을 쉼 없이 읽어주는 방이 있었다. 막판에 있는 성유물은 정말 신뢰가 가지 않는 물건들이었는데, 세례 요한의 두개골과 오른손 그리고 모세의 지팡이가 있었다. ‘Staff of Moses’라는 팻말을 보고도 모세가 바로 떠오르지 않았는데 다시 보니 모세였다. 마호메드의 털이라든가 무기, 깃발, 초기 칼리프들의 칼 같은 물건은 남아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이슬람교는 종교가 성립하자마자 정치 세력화가 되었고 권력의 상징 차원에서도 잘 관리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에 비해서 기독교는 그렇지 못했고 성유물 자체가 제대로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고 생각한다.
성유물까지 보고 홀을 몇 개 돌아다니고 나자 시간도 시간이고 배도 고파왔다. 확실히 박물관과 톱카프를 하루에 보는 일정은 빡쌘 일정 같다. 그래도 하렘까지는 보고 싶었기 때문에 하렘도 들렀다. 화려한 하렘 공간까지 빠르게 훑어가며 다 구경하고 나자 시간은 3시를 바라볼 시간이 되었다. 그린투어를 갔던 날이 떠올랐다. 만족스러운 볼거리에 취해서 구경은 계속하고 있지만, 식사가 너무 늦어져서 좀 지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좋은 식당을 찾기보다는 가까운 식당을 찾았는데, 터키에서 갔던 레스토랑 중에서 최악이었다. 가격도 나쁘고 서비스는 더 나빴다. 그래도 다행히 음식은 먹을만했던 게 다행이다. 식당에서의 경험이 별로 였기 때문에 오래 앉아 있고 싶지 않아서 스타벅스에 가서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재충전을 했다.
카페에서 PCR 검사 결과를 PDF 파일로 받았다. 내용 자체를 확인하니 검사소와 검사 시간 등이 약간 잘못 적혀 있는 등 조금 걱정스러운 내용이었다. 가짜 결과서라고 하더라도 비행기만 탈 수 있으면 상관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몇 번을 이야기하면서 J 씨를 안심시켜면서도 나도 검사서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하는 마음에 검사서에 있는 QR확인 링크를 시험 삼아서 방문해 보았다. 의외로 터키 정부 홈페이지였고 우리 검사 결과가 제대로 들어가 있다. 어쩌면 국가에서 여행 활성화를 위해 PCR 테스트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의심이 안심으로 바뀌었다.
어제 J 씨 친구가 추천해준 슐레이만 모스크로 향했다. 그랜드 바자는 어제와는 다르게 너무 고요하다. 무슬림 문화 때문일까? 일요일을 철저히 지키는 것 같다. 고요한 골목을 걸으니 분위기가 참 좋았다. 슐레이만 모스크는 슐레이만 광장과 연결된 블루 모스크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관광객은 거의 없고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편히 쉬고 있는 정원이 앞에 있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내부도 공사 중이 아닌 덕에 화려함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내부 구경을 마치고 다시 공원에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아 현지인들을 구경했다.
여자아이 하나가 해바라기 씨를 주머니에 넣고 자전거를 타는데 페달링을 할 때마다 해바라기 씨가 다 흘리는 것이다. 갑자기 깨달은 아이가 깜짝 놀라서 어머니에게 뛰어가서 해바라기 씨를 반납(?)하고 다시 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좀 더 앉아 있어 보니 작은 새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보통 해바라기 껍질을 헤집어서 안에 씨앗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그 모습이 참 귀여웠다. 평화로움에 취해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갈라타 타워가 보인다. 구름이 좀 많아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석양이 지는 시간에는 갈라타 다리를 걸어서 건너면서 구경하기로 했다.
갈라타 다리에 도착해서 건너기 시작하니 해가지는 부분에는 구름이 없어져 있다. 역시 J 씨랑 여행 갈 때는 항상 그렇지만 날씨 운이 따라준다. 주말 석양 타이밍이라 그럴까? 다리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이곳에서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유명한데 오늘도 낚시 꾼들이 가득하다. 무엇을 잡았나 살펴보니 멸치로 보이는 작은 고기들 밖에 안 보인다.
한쪽 구석에 시리아 난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음식물 쓰레기를 쌓아놓고 뒤지고 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보는 광경이었는데, 어제와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처음에는 먹을 것이 정말 없어서 뒤지나 싶어 가슴이 너무 아팠다. 지갑 안에 돈이라도 꺼내서 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 수 없는 꺼림칙한 느낌이 있어서 참았다. 그런데 오늘은 좀 생각이 달라졌다. 음식물 쓰레기를 헤집기는 해도 먹을만한 것과 아닌 것을 분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뒤지는 작업을 하루 종일 하지도 않을 것이고, 일말의 자존감이라도 있다면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하지 않을까? 덕분(?)에 별로 마음이 아프지 않게 되었다.
반대편까지 도착해 공원 구석으로 가서 일몰을 마저 즐겼다. 주변에 고등어 케밥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있는데 별로 먹어보고 싶진 않다. 점심을 좀 더 일찍 먹었다면 먹어봤을 텐데 조금 아쉽다. 부두 근처의 갈매기 떼가 대단하다. 원래도 많다고 듣기는 했는데 이건 좀 정도를 벗어난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 어시장의 생선 쓰레기를 청소차가 수거하고 있다. 역시 만사에는 이유가 있나 보다.
어둑어둑 해져가는 갈라타 근처에 있는 가장 유명한 바클라바 가게에 들러서 선물용으로 J 씨가 몇 상자를 구매했다. 손님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뭐가 어떤 맛인지 모르니 알아서 담아달라는 것 외에는 선택할 수 없었다. 디저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구매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도 몇 상자 사 올걸 그랬다. 트램을 타고 다시 건너편에 돌아오니 석양이 남겨 놓은 붉은 하늘이 우리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었다.
마지막 저녁은 호텔 앞의 레스토랑 거리에서 먹고 싶어서 생선과 케밥을 시켜먹었다. 생선 맛이 정말 좋았다. 공항에서 오면서 고생을 한 바가 있기 때문에 미리 픽업을 예약했다. 작은 차를 예약했는데 무슨 착오라도 있는지 커다란 밴이 왔다. 덕분에 신발도 벗고 다리를 뻗고 편하게 공항으로 넘어갔다. 다음에 이스탄불에 온다면 공항에서 시내로 넘어올 때는 차를 예약해야겠다.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하는데 직원이 좀 이상한 느낌이다. PCR 검사서 확인도 그렇고 티켓팅하는 프로세스가 헷갈리는지 자꾸 전화를 해가면서 한참 동안에 걸쳐서 수속을 해줬다. 공항에 사람이 별로 없는 덕에 보안 검색은 빠르게 통과하고 터키 항공 라운지에 갈 수 있었다. 터키항공 국제선 라운지는 역시 최고의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음식도 잘 준비되어 있어서 저녁을 먹지 말고 와도 좋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신 국제선은 국내선 같은 버스 서비스는 없다 우리 비행기 출구까지 예상 시간을 물어보자 15분을 잡으라고 한다. 탑승시간에 맞춰서 걸어가니 딱 15분이 걸렸다.
우리 비행기 탑승이 조금 지연되었는데, 옆 출구에서 출발하는 조지아행 항공기에서 라스트콜이 늦어져서 같다. 결국 비행기를 놓친 승객이 5명이나 되었다. 이곳 공항 사이즈를 볼 때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싶다. 우리도 미리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지 않았다면 늦었을 테니 말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그래도 갈 때보다는 많이 잤다. 그렇다고 해도 10시간 중에 서너 시간이지만 말이다. 이번에도 J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잘 잔다. 정말 부럽다. 그래도 지난주의 비행 덕에 적응이 돼서 그런지 그렇게 괴롭진 않았다.
도착해서 방역 관련 안내에 있어서 혼선이 있었다. 종이로 문답을 작성하거나 전자 작성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하면 하는데 사람들이 둘 다 작성하려고 하는 바람에 전자 작성자와 종이 작성자 줄이 꼬여버렸다. 그래도 눈치 있게 전자 작성만 하는 줄에서 버틴 덕에 방역 관련 절차도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짐이 나오지 않는다. 프라이어리티 택이 붙어있는 짐이 전부 나온 것 같은데도 우리 짐은 감감무소식이다. 한참을 기다려 나온 짐을 확인하니 이유를 알 것 같다. 어리버리한 항공사 직원이 우리 짐에 붙여야 할 프라이어리티 택은 붙이지 않고, 홍보용 택만 붙여줬기 때문이다. 덕분에 10분 이상 시간을 버렸지만 이것 또한 해프닝이다. 이번에도 J 씨 부모님이 마중을 나오셨기 때문에 짐을 찾자마자 작별인사를 하고 전철을 타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