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8일
작은 회사에서 1년짜리 인턴을 하고 있다. 벌써 6개월이 지났다. 프리랜서로만 6년, 혼자서 일해왔고, 잡무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많은 사회 초년생이 겪듯이 처음에는 '내가 이런 일까지 해?' 했던 일들을 모두 도맡아 하는 중이다. 여기에서 배운 점이 많다. 자아는 깨지고 고집도 꺾으려 노력 중이다. 완전히 바뀌었다고 선뜻 말하지는 못하겠다. 여전히 6개월이 남았고 배우고 다듬을 것이 산더미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회사 소모품을 정리하고, 몇 가지 사무용품을 사러 심부름을 다녀왔다. 저번 달 이후로 두 번째였다. 처음으로 사무용품을 사러 가는 날은 매우 신났었다. 회사원으로서 회사 용품을 사러 간다니, 완전 인턴 같았고 새로운 역할에 들떴다. 또 한창 능률이 떨어지는 오후 4시에 나갔다 올 핑계가 생기는 것도 좋았다. 오늘은 조금 달랐다. 귀찮거나 하기 싫은 것은 아니지만, 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월 200만 원의 월급이 시급 200만 원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만 보면 아직도 정신을 덜 차린, 덜 깨진 사회 초년생 같다. 자만심이 하늘을 찌른다.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읽어 내려가 주시길. 나는 똑같은 업무를 두 번째 해본 것이고, 익숙해졌고, 남은 6개월 동안 이런 심부름을 몇 번이나 더 하게 될지 셀 수도 없다. 덧붙이자면, 인턴 계약서를 쓸 때는 모 회사 임직원을 위한 온라인 줌수업을 제공하는 업무를 한다고 들었었는데, 뭐가 점점 많아졌다. 20명 남짓 회사 구성원 모두의 니즈에 맞춰서 한 달에 4-5번 간식도 사서 채워야 하고, 물티슈와 갑 티슈는 어찌 그리 빨리 사용되는지... 내 업무도 하고, 사무실 에어컨 8대 전원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려면 머리가 아프다. 적어두고 메모해도 결국 한 두 개는 놓쳐 혼나기 일쑤이다. (차라리 놓치고 잘못한 게 있으면 바로 지적해 준다면 좋겠다. 주영 프로, 이거 맞아요? 그렇게 한 거예요? 어떻게 생각해요? 물음표 살인마라는 단어는 괜히 나온 게 아니다ㅠ)
근래 한근태 작가의 '청춘예찬'을 재밌게 읽었다. 책의 내용 중 오늘 글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벽산 건설 김재우 부회장의 좌우명, '착안대국, 차수소국' 크게 보고 일을 시작하지만, 디테일에도 신경 쓰라는 말이라고 한다. 저자도 덧붙인다. 성실성은 치밀함이라고. 7년간 프리랜서 요가강사로 일하면서 나는 항상 갖춰진 곳에서 내 일만 했다. 마냥 수십 명 회원들 앞에서 인사나 하고, 웃으면서 환심을 사기 바빴다. 요가원에 떨어지는 머리카락 한 올, 수건 빨래 하나 내 일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다 포기하고 지금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청춘이 다하기 전에 혼날 수 있고, 디테일을 배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더 늙어서는 고집이 더 세져 귀를 닫아버렸을지 모른다. 깨달음은 양면이다. 이 작은 회사에서 창틀을 닦고, 바닥을 쓸며 나는 꿈꾼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뽐내고 싶은 강한 욕망을 마음속에 키운다. 그래서 더 열심히 돌돌이를 문지르고, 구석구석 유리거울을 닦고, 분리수거를 한다. 이 작은 조직이 내 꿈을 품고 키워주는 것에 감사하다.